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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한여름 밤의 고마운 벗 더위지기

더위지기       Artemisia gmelinii Weber ex Stechm.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야에서 허리 높이 정도로 자라는 국화과의 갈잎떨기나무.

줄기는 모여 나고 윗부분에서 가지를 많이 치며 잎은 깃털모양으로 깊게 갈라진다.

7~8월에 지름 3mm 정도의 머리모양꽃차례가 아래를 향해 원뿔모양으로 달린다.

 

 

 

뉴질랜드 여행에 매료된 친구가 그 곳의 식물도감을 사와서 보여주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반구의 식물은 대부분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이었다.

뉴질랜드의 식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무에서 피는 국화꽃들이었다.

이를테면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같은 꽃들이 모두 사과나무 크기의 나무에 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국화과 식물 400여 종은 거의 초본이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더위지기라는 쑥의 한 종류다.

더위지기는 단단한 목질의 줄기가 죽지 않고 겨울을 나서 봄에 새싹이 나는 작은 나무다.

식물학의 관점에서는 나무로 분류하지만 사실 문외한이 보기에는 여느 풀들처럼 보인다.

몇 년이 지나도 허리높이 이상 자라지 못하다가 결국은 풀들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에 자생하는 스물다섯 가지 쯤 되는 쑥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보니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찾아내기가 어렵고 그리 흔한 식물도 아니다.

 

(배영구 님 사진)

더위지기라는 이름은 이 쑥의 효능과 크게 관련은 없는 듯하다.

한방서적에는 주로 소화기 계통의 질환과 냉증에 효험이 있다고 나와 있고

굳이 더위와 관련이 있다면 땀을 많이 흘리는 다한증에 좋다는 정도다.

 

더위지기는 흔히 인진쑥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약재명은 한인진(韓茵蔯)이다.

한방에서 인진쑥은 사철쑥의 지상부를 가을에 채취한 한약재 인진호(茵蔯蒿)를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인진의 은 사철쑥 이고 은 더위지기 이다.

그러므로 쑥 중에 으뜸이라고 쳐주는 인진쑥이라는 칭호는

더위지기와 사철쑥의 공동 수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배영구 님 사진)

더위지기라는 이름은 한여름 밤에 피웠던 모깃불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옛날 농촌에서는 여름 저녁에 집안에 열기가 남아있어서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저녁을 먹은 후에 모깃불과 관솔불을 피워놓고 식구들끼리 도란거리며 잔일을 했다.

그 때 모기를 쫓기 위해 태웠던 것이 더위지기와 같은 여러 가지 쑥이었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오순도순 보내던 그 시절의 저녁을 회상해보면

내 생애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었던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