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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해당화     Rosa rugosa Thunb.

 

전국의 바닷가 모래땅에서 키 높이 정도까지 자라는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5~7월에 가지 끝에 지름 5~8cm의 꽃이 1개 또는 드물게 3개까지 달린다.

열매는 지름 2~2.5cm의 납작한 구형으로 8~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해당화가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은 지금도 많이 불려진다.

섬마을 선생님1960년대 초에 KBS에서 방송했던 라디오 연속극의 제목이었다.

시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TV 보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나마 전파가 겨우 잡히는 당시 국영방송의 연속극 외에는 즐길거리가 별로 없었다.

 

그 무렵 고향 마을에는 사십여 가구 중에 두어 집에만 라디오가 있었다.

~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로 시작되는 이미자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동네 아낙들은 바느질거리 같은 일거리를 들고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모여들었다.

남정네들은 연속극이 끝나기를 기다려 라디오를 사랑방으로 옮겨서 뉴스를 들었다.

 

나는 그 때 열 살도 되지 않아서 여인네들 틈에 끼어 연속극을 들었다.

연속극 보다는 조그만 상자 속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소리 자체가 신기했다.

연속극이 인기가 높았는지 주제가가 히트를 했는지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그 영화는 문희, 오영일, 이낙훈 등 그 시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줄거리는 다 잊어버리고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의 풍경과

철새처럼 왔다간 섬마을 선생님을 사랑한 섬색시가 있었다는 노랫말로만 기억하고 있다.

해당화 꽃의 순수한 붉은 빛은 분명 열아홉 살 섬색시의 순정을 은유하고 있다.

푸른 바닷가 하얀 모래밭에 피는 붉은 꽃에서는 더욱 애달픈 정서가 느껴진다.

 

해당화는 바닷가나 섬마을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바닷가에서 오십 리나 들어온 이웃마을 냇가 모래땅에도 해당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늦여름에 해당화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아이들이 앞 다투어 따먹었다.

눈깔사탕만한 해당화 열매는 도톰한 껍질을 먹었는데 약간 달콤한 맛이

요즘 유행하는 파프리카와 약간 비슷한 맛으로 기억된다. 

 

누가 뭐래도 해당화에는 이미자의 노래에 실린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사랑을 나눈 총각선생님과 열아홉 살 섬색시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드라마는 잊혀져도 애절한 곡조에 실린 노래의 여운은 6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