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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착한 덩굴식물 담쟁이덩굴

담쟁이덩굴      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old & Zucc.) Planch.

 

바위, 돌담, 나무 등을 타고 10m 이상 줄기를 뻗는 포도과의 갈잎덩굴나무.

짧은 가지의 잎은 보통 세 갈래로 갈라지며 긴 가지의 잎은 작고 갈라지지 않는다.

5~6월에 짧은 가지에서 나온 꽃차례에 지름 2mm 정도의 연한 녹색 꽃이 핀다.

 

 

 

 

군 복무 시절에 전남 상무대에 있는 군사학교에서 학교장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광주나 김해 등 대도시의 확장에 따라 밀려나다시피 한 다섯 개의 전투병과학교를

한적한 지방으로 옮기면서 동시에 건물을 지은 지 20년 쯤 지난 무렵이었다.

여러 학교를 똑 같은 설계로 쌍둥이들처럼 지었는데 그 중 한 학교만 멋지게 보였다.

 

그 학교는 일찌감치 담쟁이덩굴을 심어서 3층 건물을 보기 좋게 장식하고 있었다.

도시의 확장으로 50년 가까이 정이 들었던 요람에서 한적한 시골로 밀려난 학교가

담쟁이덩굴로 인해서 긴 역사의 전통을 빠른 기간 안에 회복한 듯 보였고

천편일률로 지어진 군대식 건물이지만 제법 명문학교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연희관의 오래된 담쟁이덩굴은 줄기 지름이 10cm가 넘는다.)

우리학교도 먼 후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담쟁이덩굴에 대해 공부를 좀 했다.

저렇게 건물을 고풍스럽고도 멋들어지게 장식하는 덩굴이지만 혹시나

건물의 내구성에 해를 끼치거나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염려가 되어서였다.

담쟁이덩굴은 바위나 돌담을 타고 오를 때 빨판 같은 기근을 내어 줄기를 고정하므로

건물에 해로움이 없고 여름에는 외벽이 받는 열기를 차단하는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하기야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어 아이비리그라고 불리는 미국 동부의 8개 명문대학

건물들로 미루어 보더라도 담쟁이덩굴은 건물에 무해한 식물임이 증명된 셈이다.

우리나라 연세대학교의 가장 오래된 건물 연희관과 그 앞의 언더우드관도 백년 쯤 된

담쟁이덩굴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서 명문대학의 역사성과 품격을 더해주는 듯하다.

 

(목숨 수( 壽 )자를 연상하게 하는 담쟁이덩굴)

담쟁이덩굴은 그 이름처럼 돌담이나 석조건물, 암벽타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물이지만

오래된 거목들을 타고 자라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느 덩굴식물처럼 다른 나무의 잎을 통째로 뒤덮어서 고사시키는 경우는 없고

오직 줄기에만 기근을 내어 타고 올라가는 착하기만한 덩굴이다.

 

어느 가을날 산길을 가다가 바위 위에서 빨갛게 물든 담쟁이를 만났다.

기이하게도 그 줄기를 뻗은 모습이 영락없이 목숨 수()자를 수놓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착한 덩굴이 만수무강(萬壽無疆)까지 빌어주니 더욱 기특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