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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노박덩굴 이름의 유래

노박덩굴       Celastrus orbiculatus Thunb.

 

다른 나무를 감거나 바위를 타고 10m 이상 줄기를 뻗는 갈잎덩굴나무.

암수딴그루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암꽃은 1~4개, 수꽃은 1~7개가 달린다.

열매는 가을에 노랗게 익어 3갈래로 갈라지며 종자는 빨간 가종피에 싸여있다.

 

 

 

 

노박덩굴은 꽃들이 거의 사라지는 계절에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를 자랑한다.

오래 묵은 덩굴은 높은 나무나 절벽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한다.

속명 Celastrus는 고대 그리스어로 늦가을을 의미하는 celas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산천초목이 쓸쓸한 빛으로 퇴색하는 계절에 홀로 돋보이는 이 식물에 걸맞은 이름이다.

 

노박덩굴의 유래는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 부르던 이름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여든을 넘기신 아버지와 숙부는 평생 산골에서 나무와 불가분의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나는 더 늦기 전에 나무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들으려고 고향으로 이주한 터였다.

느 날 두 분을 모시고 읍내에 가던 길에 높은 절벽을 타고 오른 노박덩굴을 만났다.

절벽 아래에 차를 세우고 저 덩굴의 이름을 아시느냐고 물었던 까닭은

혹시나 노박덩굴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만한 단서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노파우덤불’, 숙부는 노파위덩굴이라고 했다.

마침 그 자리가 높은 절벽 아래여서 그 발음이 높바우높바위로도 들렸다.

그렇다면 높은 바위를 타고 오르는 덩굴에서 유래한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집으로 돌아와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보니 역시나 그럴 개연성이 높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노박덩굴놉방구덩굴을 병기하고 있었다.

방구는 경북 이북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바위의 방언으로 쓰이므로 높바위와 연결된다.

 

그런데 노박덩굴의 다른 이름에 노방덩굴도 있다.

우리 나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박상진 박사는 이 식물이 길가에 흔히 자라므로

길가의 옛말인 노방(路傍)에서 노박이 유래했을 걸로 보고 있다. (우리나무의 세계 2)

어쩌면 노박은 높바위와 노방의 중간에서 적당하게 버무려진 이름일는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덩굴식물이 다른 나무나 바위를 기어오르는 건 햇빛을 잘 받으려는 까닭이다.

이런 면에서 노박덩굴은 어느 덩굴식물 못지않은 감고 타고 기어오르기 선수다.

감을 것이 없는 곳에서는 이리저리 줄기를 휘면서 자라다가 지지할 물체나 나무가 있으면

유연하고 야무지게 감으며 아주 높은 곳까지 거뜬하게 타고 오른다.

 

노박덩굴의 근연종에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푼지나무가 있다.

푼지나무는 덩굴성이기는 해도 줄기가 어떤 것을 감지 않는 대신에

달라붙는 기근을 내어 다른 나무나 물체를 타고 오르는 차이가 있다.

엄연히 덩굴성이지만 감지는 않아서 나무로 부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