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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배신의 빨간 열매 까마귀밥나무

까마귀밥나무       Ribes fasciculatum Siebold & Zucc.

 

전국의 낮은 산지에서 1~1.5m 높이로 자라는 까치밥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암수딴그루, 드물게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지름 5mm 정도의 꽃이 핀다.

열매는 지름 7mm정도의 구형으로 10~11월에 붉게 익는다.

 

 

 

 

까마귀밥나무는 그리 귀한 나무는 아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까치밥나무나 꼬리 까치밥나무처럼 비슷한 이름의 나무들도 대여섯 종이 더 있는데,

모두 까치밥나무과 Ribes속의 갈잎떨기나무들로 꽃과 잎 모양이 비슷하다.

이들 중에서 까마귀밥나무만 그런대로 볼 수 있고 다른 나무들은 꽤 귀한 편이다.

 

이들 까마귀와 까치 돌림자를 쓰는 나무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대부분 빨갛고 탱글탱글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 열매들은 작은 앵두와 같아서 본능에 잠재하는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작 맛은 씁쓸하고 떨떠름해서 그 먹음직스러운 모양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마도 그 배신감에 까마귀나 까치나 먹으라고 그런 이름을 붙였으리라고 믿는다.

사실 그런 색깔, 그런 크기의 열매는 새들이 먹는 것이 보편적인 자연현상이다.

 

북한의 한방치료법을 집대성한 동의치료경험집성에는 이 나무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옻나무가 많은 숲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거나 그 물에서 목욕을 하면 절대로 옻이 오르지 않는데

그 숲을 조사해보니 옻나무와 까마귀밥나무가 함께 살면서 대부분 서로 뿌리가 엉켜 공생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현상에 착안해서 북한의 의료연구자들은 까마귀밥나무를 이용한 옻 해독법을 정립했다.

 

임상결과에 의하면 까마귀밥나무의 잎과 줄기를 잘게 썰어서 물을 붓고 달여 먹거나 바르면

대부분 6일 이내에 깨끗이 완치되어 어떤 치료제보다도 빠른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옻을 치료하지만 의료체계가 열악하고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북한의 실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효과적인 민간요법으로 여겨진다.

 

 

(까마귀밥나무 열매. 김형소님 사진)

까마귀밥나무에는 칠해목(漆解木)이라는 옛 이름이 있다. 옻의 독을 해독한다는 뜻이다.

까마귀밥나무와 옻나무의 관계를 오래전부터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칠해목은 약효를 밝히는 이름이고 까마귀밥나무는 이제는 쓸모없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문명의 발전은 야속하게도 고마운 나무 이름까지 바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