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미선나무 우표 이야기

(이우락님 사진)

미선나무     Abeliophyllum distichum Nakai

 

충북, 전북, 경기 숲 가장자리나 바위지대에 자라는 물푸레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1~2m 높이로 자라며, 3~4월에 지름 2cm 정도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모여 달린다.

동종이형 식물로 장주화/단주화에서 암,수술이 서로 4mm/2mm로 길이가 바뀐다.

9~10월에 지름 2.5cm 정도로 익는 황갈색의 열매가 부채 모양을 닮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미선나무가 대단한 나무인줄 알았었다.

1960년대에 들면서 미선나무와 금강초롱꽃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홍보하면서

이 두 식물을 우표로 발행해서 거의 모든 국민이 아주 특별한 식물인 걸 알게 되었다.

나라에 자랑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백성들에게 그걸로 나마 자부심을 심어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두메산골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는 이렇게 특별한 식물이 두 가지나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정말 축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지몽매했었다.

 

(1962년에 발행된 미선나무와 금강초롱꽃 우표)

더욱 미선나무를 대단하게 여긴 것은 그 때 편지 한 통에 4원짜리 우표를 붙였는데,

미선나무는 액면가가 20원이었으니 지금 돈으로는 2,000원 쯤 되는 고액 우표였던 셈이다.

오죽하면 미선나무 우표를 대량으로 위조해서 유통한 사건까지 발생했겠는가.

당시의 최고액권인 백원짜리 지폐를 위조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선(美扇)나무의 이름은 이 나무의 열매가 아름다운 부채를 닮은 까닭이다.

비슷한 열매를 맺는 식물들도 많지만 미선나무의 열매는 그 폭이 2.5cm나 되어서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가운데에 공작꼬리 같은 무늬까지 있어서 특별하다.

 

(미선나무 열매. 한승희님 사진)

당시 체신부 우표도안실장을 지냈던 강춘환씨의 회고록에 의하면 미선나무 자생지에 가서

꽃은 스케치를 했는데 결실 시기가 아니어서 도감 그림을 보고 우표도안을 완성했다고 한다.

도감의 그림을 베껴서 그런지 당시 우표의 열매 부분은 실제 모습에 비해 부자연스럽다.

회고록에 의하면 그 무렵에도 미선나무가 유명세를 탔던 때문인지 남채와 도채가 심해서

자생지는 쑥밭이 되었는데 인근의 가정집이나 학교에 심어 기르는 것이 더 흔했다고 한다.

모르기는 해도 미선나무는 야생식물 불법채취 대상 1호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자생지도 몇 군데 더 발견되었고 적절하게 보호되고 있어서 걱정이 없다.

 

미선나무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것은 초등학교 때 우표를 수집했었기 때문이다.

사서 모은 건 아니었고 일가친척집에 가서 봉투에 붙은 우표를 곱게 떼어오는 정도였다.

그리 많지도 않았고 특별한 우표도 없었지만 추억삼아 삼십여 년은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서 집안에 가져갈 물건이 변변찮았던지 그 우표책만 털어 갔다.

그 중에 액면가로 가장 비싼 우표가 아마도 미선나무였지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