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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천성산의 전설과 주걱댕강나무

주걱댕강나무     Abelia spathulata Siebold & Zucc.

 

경남 양산 천성산의 산지 사면에서 2~3m 높이로 자라는 린네풀과의 갈잎떨기나무.

5월에 가지 끝에 길이 3cm 정도의 연한 황색 또는 상아색의 꽃이 2개씩 달린다.

 

 

 

주걱댕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경남의 천성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나무다.

같은 속의 댕강나무나 털댕강나무 역시 일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흔치 않은 나무지만

주걱댕강나무는 그 나무들보다 꽃이 크고 우아해서 애호가들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는다.

 

이 나무를 보러 천성산 내원사 계곡으로 들어섰을 때 뭔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들어갈수록 계곡이 넓어져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신령하고 청정한 분위기가 더했다.

천성산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니 과연 이런 특별한 나무도 깃들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산의 전설은 엄청나게 스케일이 크고 또 그만큼 황당한 스토리다.

옛날에 원효대사가 수행 중에 어느 절의 법당 기둥이 썩어 곧 무너질 걸 예견하고는

급히 마루 판자를 뜯어 몇 글자를 써서 당나라 장안의 종남산 운제사 위로 던졌다.

운제사 법당 안에 있던 승려들이 하늘에 판자가 떠 있는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두 나왔는데 이 때 바로 법당이 무너지고 하늘에 떠 있던 판자가 내려왔다.

 

원효대사가 당나라까지 던진 판자에는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求衆),

‘바다 동쪽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하노라’는 글이 씌어 있었.

대사의 엄청난 법력에 감동한 천 명의 승려가 당나라에서 건너와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원효는 이들을 위해 89개의 암자를 지었고 산 위의 넓은 광장에서 화엄경을 설법했다.

그 천명의 제자들이 모두 성인(聖人)이 되어서 그 산을 천성산(千聖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천성산의 주걱댕강나무는 전설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꽃의 생김새가 특별하다.

그 독특한 생김새는 주걱댕강이라는 이름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걱은 꽃부리의 끝이 주걱처럼 넓고 안쪽이 자루처럼 가는 형태에 비유한 듯하고,

댕강은 작은 물체가 단번에 잘려 나가거나 가볍게 떨어지는 모양, 또는

그렇게 매달린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이므로 목을 길게 뺀 듯한 꽃모양에 어울린다. 

꽃과 꽃받침이 위태롭게 연결된 그 모습이 바로 주걱댕강의 이름에 상응한다.

 

주걱댕강나무의 꽃부리는 그림으로 보던 옛날 유성기의 나팔이 떠오르면서 

꽃부리 안의 주황색 무늬는 악보와 같아서 감미로운 음악까지 들려줄 듯하다.

꽃부리가 나팔처럼 쑥 빠져나와 꽃을 받칠 일도 없는 꽃받침은

연한 주황색의 별 모양으로 제가 꽃보다도 아름답다는 듯 미모를 뽐낸다.

이래저래 천성산의 주걱댕강나무는 한나절을 즐길만한 특별한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