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꽃으아리 Clematis patens C.Morren & Decne.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야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갈잎덩굴나무.
5~6월에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5cm 정도의 꽃이 1개씩 핀다.
꽃잎처럼 보이는 화피편은 5~8장이며 뒷면에 털이 밀생한다.
산과 들에서 큰꽃으아리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그만큼 드물기도 하지만 꽃이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기분이 좋아진다.
으아리속(Clematis)에는 종덩굴, 병조희풀, 참으아리 등 한미모하는 꽃들이 많지만
그 모든 꽃들이 큰꽃으아리의 격조 높은 미감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큰꽃으아리의 하얗게 펼친 넉넉한 꽃잎(花被片)은 곱게 차려입은 모시적삼과 같고
그 가운데를 은은하게 물들인 포르스름한 무늬는 어떤 신비감마저 불러온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큰꽃으아리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꽃잎이라고 여기는 것이 식물학의 관점에서는 꽃받침이 변형된 것이다.
사람들은 꽃잎이라고 여겨도 알고 나면 꽃잎이라고 함부로 쓰지 못한다.
어쨌거나 그 귀한 꽃을 만난 기쁨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기가 일쑤다.
꽃잎처럼 보이는 우아한 화피편은 오월의 볕에 한 나절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가고
설상가상으로 그걸 맛있게 먹어치우는 벌레가 있는지 온전한 꽃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꽃이 크기와 아름다움에 비례해서 그 불쌍한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도 크다.
큰꽃으아리의 깨끗한 개화 상태를 보려면 꽃이 피는 장소를 미리 알아두고
시시때때로 개화를 살펴야 하지만 그곳이 가까운 곳에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해인가 개화 적기를 약간 놓쳐서 몇 개체를 발견하고는 이듬해 꽃 피는 시기를
한참 앞두고 찾아갔더니 다른 식물들만 무성하고 큰꽃으아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추측건대 주변의 수풀이 무성해지면서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듯했다.
대체로 조물주의 작품 중에 실패작은 없다는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이 큰꽃으아리를 대할 때만은 약간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식물은 창조주가 축복하며 당부한 ‘번성하라’는 기본적인 명제에 미치지 못했다.
꽃을 피우고 나서 한나절도 그 아름다움을 지키지 못해 보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결코 길지 않다는 교훈이라도 주려는 것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큰꽃으아리는 아름다운 실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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