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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칡에게도 생각이 있나보다

     Pueraria lobata (Willd.) Ohwi

 

전국의 산야에 분포하는 콩과의 갈잎덩굴나무로 10m 이상 줄기를 뻗는다.

7~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한 뼘 정도의 꽃차례가 나와 아래서 위로 꽃이 핀다.

열매는 길이 4~9cm 의 납작한 콩꼬투리 모양이고 9~10월에 익는다.

 

 

 

 

칡은 이미 온 나라 산과 들을 덮어 공공의 적이 된지 오래다.

칡의 지나친 번식은 우선 농사 짓는 사람, 삼림을 관리하는 사람,

전신주를 관리하는 사람,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골칫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칡 제거에 한 해에 150억 원 정도를 쓰고 있으나 시범사업에 불과하고,

미국 남부에서는 해마다 5억 달러, 6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칡은 쓸모가 참 많았던 고마운 식물이었다.

우선 길고 질긴 칡 줄기를 밧줄로 많이 썼고 삼태기 같은 생활도구를 엮어 썼다.

흉년에는 칡뿌리를 캐서 양식을 대신했고 한약재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가축의 먹이나 퇴비의 재료로도 널리 쓰여서 칡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토끼를 잡을 때 칡덩굴을 미끼로 썼다.

토끼가 유혹에 쉽게 넘어갈 정도로 칡이 흔하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요컨대 칡의 번식력과 인간의 씀씀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칡은 더 뻗어나갈 땅이 있을 때 꽃을 피우는 듯 보였다.)

근래에 칡꽃을 관찰하러갔다가 평소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였다.

칡이 한 골짜기를 완전하게 뒤덮은 곳에서는 거의 모든 개체가 꽃을 피우지 않았고

칡이 별로 없는 공터나 트인 곳에서는 풍성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단 것이었다.

이미 숲을 완전히 뒤덮은 곳에서 꽃을 피우고 결실을 한들 2세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주변에 그들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여유공간이 있을 때 씨앗을 만드는 걸 보면

칡에게도 무슨 생각이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현상으로 보였다. 

 

비단 칡에게서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울창한 숲에서는 머루, 다래, 으름 같은 열매를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다래 덩굴 수백 개체를 살펴 본 중에 열매가 열린 것은 고작 한 두 개체뿐이었다.

식물의 세계에서도 더 이상 번성할 땅이 없는 곳에서는 출산 조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칡이 완전히 뒤덮은 곳에서는 꽃이 핀 개체가 없었다.)

2020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큰 변곡점을 찍는 해가 될 것 같다.

몇 해 전에 지구상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되더니

이 해를 정점으로 드디어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좁은 국토의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가 젊은이들의 삶을 힘겹게 하고

그것이 취업과 내집 마련 그리고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하게 만든 건 아닐까.

대자연의 섭리와 사람 사는 세태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