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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가깝고도 먼 나무 회양목

회양목    Buxus microphylla Siebold & Zucc.

 

남해의 도서지역이나 내륙의 석회암지대에 분포하는 늘푸른떨기나무다.

보통 2~4m 높이로 자라며 잎이 가죽질이고 겨울에 누렇게 변한다.

3~4월에 잎겨드랑이에 자잘한 연한 황색 꽃이 모여 핀다.

 

 

 

 

회양목에는 네 가지 특별함이 있다.

몇몇 변종과 원예종이 있지만 회양목과 회양목속의 111종인 3대 독자다.

그리고 중부 내륙지역에서 상록으로 겨울을 나는 몇 안 되는 활엽수 중의 하나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성장이 더디고 단단한 나무라고 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특별함이 있다.

 

회양목은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약간 누렇게 마른 듯한 모습으로

월동을 하기 때문에 황양목(黃楊木)으로 부르다가 회양목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이 나무는 석회질(石灰質)의 토양(土壤)에서 주로 자라므로 생태적으로도 灰壤木이다.

우연히도 나무 이름과 같은 강원도 회양군(북한)에도 석회토양에 회양목이 흔하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회양목은 경기도 여주 효종대왕릉의 재실(齋室) 앞에 있는데,

300살 정도로 추정되는 나무가 겨우 두 키 남짓한 높이에 굵기는 허벅지 정도다.

나무의 성장이 더딘 만큼 재질이 미세하고 단단하며 균질해서 예로부터 도장이나 낙관,

머리빗처럼 정교한 세공이 필요한 생활도구나 조각품, 인쇄 목판이나 활자 등을 만들었다.

그런 까닭으로 옛날에는 도장나무나 도장목라는 이름이 보편적으로 쓰였던 듯하다.

 

(경북 청송의 회양목 군락)

회양목은 아주 가까이 있거나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나무다.

도시의 아파트 화단이나 공원과 거리에서 일상처럼 만나는 나무가 회양목이다.

그 나무들은 사람들의 취향이나 거리의 공간과 미감에 합당한 조연이 되도록

인위적인 모습으로 각지거나 둥글게 다듬어지고 가꾸어진다.

 

회양목이 자연 속에서 제 모습대로 사는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 나무는 대체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지역의 암벽에 붙어 살기 때문이다.

평창, 영월, 단양 등지의 수직 절벽이나 제주도 산방산의 화산암벽 같은 곳이다.

그 중에 가장 멋진 곳에 자리 잡은 나무들은 동강 유역의 회양목들이지 싶다.

맑은 강물을 병풍처럼 두른 절벽에 아름다운 동강할미꽃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인과 도시의 회양목, 자연인과 자연 속의 회양목은 끼리끼리 닮았다.

전자의 조합은 사회와 조직이 원하는 정형으로 살아야하는 경향이 있고

후자는 비록 척박한 환경이어도 자유롭게 제 멋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