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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큰키나무

碑木의 그늘에 가려진 비목나무

 

비목나무     Lindera erythrocarpa Makino

주로 남부지방의 산지에서 6~10m 정도로 자라는 녹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암수딴그루로 4~5월에 새가지 밑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황색 꽃이 모여 핀다.

열매는 지름 7mm 정도의 구형으로 9~10월에 붉게 익는다.

 

 

 

충무공(忠武公)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오백년 역사에서 충무공 시호를 받았던 남이, 정충신, 김시민 등

다른 훌륭한 여덟 분의 장군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또 이순신(李舜臣)장군 휘하 장수였던 이순신(李純信)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동명이인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너무 걸출하면 다른 사람이 기억되지 못하듯이,

가곡 비목을 부르는 사람은 많아도 비목나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에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 애창곡 비목의 첫머리다.

작사자 한명희 선생이 6. 25가 끝난 후 십여 년 쯤 뒤에 최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수많은 전사자들의 비목(碑木)과 처절했던 전투의 흔적에서 받은 애상(哀想)에서 탄생한 노래다.

 

 

비목나무는 이 노래 제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무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가곡의 인기에 묻혀 존재감이 희미해지거나 노랫말의 비목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나무다.

비목나무는 중부 이남에 분포하지만 주로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난대성 나무여서

6.25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휴전선 일대에서는 비목(碑木)으로 쓰일 기회도 없었던 나무다.

나무 이름에 들어간 비목은 여러 자료를 뒤져보아도 공감이 될만한 유래를 찾지 못했다.

더욱이 요긴한 쓰임새도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그리 사랑받는 나무도 되지 못한 듯하다.

 

그나마 이 나무에서 한 가지 봐줄만한 건 아름답고 풍성한 꽃차례다.

자잘한 꽃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피기 때문에 꽃이 필 때는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다.

자세히 보면 꽃잎과 같은 여섯 개의 꽃받침잎이 밀랍만큼 투명해서 여간 곱지가 않다.

그리고 꽃이 필 때 같이 나오는 연두색 새잎과의 조화도 충분히 아름답다.

 

(비목나무의 암꽃차례(왼쪽)와 수꽃차례(오른쪽))

비목나무는 암수딴그루 식물이어서 암꽃과 수꽃을 구별해서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암꽃도 수꽃과 비슷한 헛수술을 달고 있어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려워서 꽃차례가 풍성하면 수꽃, 좀 적은 건 암꽃이려니 하고

사진을 찍어서 확대를 해보면 어림짐작했던 것이 거의 틀림이 없었다.

 

국민 가곡 비목의 그늘에서 빛 못 보는 나무에게 뭔가를 찾아주고 싶어 자세히 보았으나

고작 밀랍같은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것 밖에는 어떤 기특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어 슬픈 비목(悲木)은 아닐 터이다.

 

 

2020.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