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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큰키나무

이 나무가 이나무요



 















이나무

Idesia polycarpa Maxim.

 

이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로 전남 지방과 제주도에 주로 분포한다.

암수딴그루이며, 4~5월에 황록색 꽃이 원추꽃차례로 늘어져 달린다.

열매는 지름 8mm정도의 구형으로, 가을에 붉게 익는다.

    

 

이나무를 볼 때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이()씨 집안에 성을 가르쳐줘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자란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가 서당에 처음 가는 날, 아버지가 아들의 손바닥에 이를 한 마리 그려주면서,

'필시 서당 훈장님이 네 성을 물을 테니 생각이 안 나면 손바닥을 펴 보거라했다.

아이는 손바닥의 이가 도망이라도 갈세라 주먹을 꼭 쥐고 서당까지 십리를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당 훈장이 네 성이 무엇인고?’하고 묻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시킨 대로 손바닥을 펴 보았더니 이의 다리는 땀으로 다 지워져서,

깨알 같은 몸뚱이만 남은 걸 보고서는 제 성은 깨씨...’라고 했더란다.


(이나무의 잎자루에 붙은 선점)


이나무는 잎자루에 붙은 선점이 피부기생충인 를 닮아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잎자루의 선점도 그렇지만 이나무의 수피도 온통 이가 바글바글 붙어 있는 형상이어서

정말 그럴싸한 유래설로 들리기는 하지만 기록상으로는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나무의 이름은 1942년에 정태현 선생이 저술한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의나무로 등장하는데, 의나무 또는 기댈 의 한자음을 취한 것이다.



이나무라는 이름은 1966년에 이창복 선생이 펴낸 한국수목도감에 처음 나온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이 나무를 로 부르던 것이 우리나라에서 의나무가 되었고,

가 발음하기 편하게 로 변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피부기생충 유래설은 이나무로 정착된 후에 그럴듯하게 갖다 붙였지 싶다.

잎자루를 보고 이름을 지었다면 이나무보다 깨나무가 더 가깝지 않은가


 

유래설은 기골이 장대하고 꽃이 멋진 이 나무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나무의 꽃은 수 백 가지 나무꽃 중에서도 특별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다.

신록의 계절 오월에 밝은 녹색의 넓직한 잎 아래에 달리는 이 나무의 꽃은

신라왕관에 늘어진 금장식처럼 화려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나무의 암꽃차례(왼쪽)와 수꽃차례(오른쪽))


암꽃은 머루 송이 같은 열매로 가을에 붉게 익어 온갖 새들의 좋은 양식이 된다.

수꽃은 수분을 마치면 시들 때까지 달려있지 않고 꽃자루까지 미련 없이 뚝뚝 떨어져

나무 아래서 다시 한 번 샛노란 꽃밭을 만들어 그 또한 봐줄만한 낙화세상이 된다.


(시들지 않고 꽃자루 채로 떨어진 수꽃의 무리)


그런데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무슨 중독성이 있는지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이가 생각난다.

이들이 득실대던 그 때 그 시절이 불편하기는 했어도 너무나 그리운 까닭은 아닐는지..,

이는 이제 주변에서 사라져 전설이 되고 이나무의 껍질에 박제가 된 듯하다.

 

2018.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