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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큰키나무

가슴이 먹먹해서 머귀나무인가


 


 












머귀나무      운향과

Zanthoxylum ailanthoides Siebold & Zucc.

 

줄기에 도깨비방망이처럼 굵은 가시가 돋치는 갈잎큰키나무다.

암수딴그루로 8~9월에 지름 3mm정도의 꽃들이 편평꽃차례로 핀다.

제주도와 울릉도, 남부지방의 바다 가까운 산지나 들에 자란다.

 



  

 

옛날에는 부모상을 당하면 상장喪杖이라는 지팡이를 짚었다.

상주는 크나큰 슬픔에 몸을 가누기 어려우리라는 배려이자 당위였다.

아비가 죽으면 대나무로, 어미가 죽으면 오동나무로 상장을 삼았다.


대나무 상장은 줄기가 둥글게 빈 것을 하늘에 비유해서,

사철 푸른 댓잎처럼 아비에 대한 변함없는 효심을 나타냈다.

오동梧桐나무는 아비와 같다는 의미로 자 음이 들어있고,

지팡이 끝을 땅을 상징하는 네모로 깎아서 어머니를 기렸다.

 


제주도 사람들은 모친상의 상장을 머귀나무로 쓴다.

험한 가시가 돋친 이 나무를 짚고 손에 피를 철철 흘리며

어미를 잃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라는 뜻이라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고통이 따를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무서운 가시는 단지 상징일 뿐, 껍질을 벗기고 가시를 다듬어 썼다.

머귀나무 가시가 주는 직접적인 고통의 의미를 취했다기보다는

제주도에 희귀한 오동나무 대신으로 쓰였을 개연성이 크다.


 

머귀나무의 이름에 무언가 유래가 있을 법도 하지만 찾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귀(母歸)나무가 되었다가 머귀나무로 변했는지,

가시지팡이 짚고 상여 따라가는 가슴이 먹먹해서 머귀인지 모를 일이다.

 

가시는 상대를 겁주는 듯 보이지만 본질은 자신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머귀나무와 같은 운향과의 초피나무나 산초나무를 보면 안다.

머귀나무는 자라면서 가시가 떨어지고 울툭불툭한 돌기만 남았다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크기가 되면 돌기까지 연륜에 잠기듯 흔적만 남는다.

초피나 산초는 덩치가 크지 못한 불안감에 가시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사람들도 야성과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 가시를 내기도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까칠하고 상처 주던 것들이 나이 속으로 잦아든다.

위로만 솟구치던 줄기는 자랄수록 옆으로 뻗어 편평한 자태가 된다.

잦아들고 편안해지는 머귀나무에서 새삼 연륜의 의미를 알 듯하다.

 

2018.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