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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정처없는 곳에서

그 많던 싱아는 정말 싱아였을까



 

싱아

Persicaria alpina (All.) H.Gross

 

산과 들의 양지에서 자라는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m 정도.

줄기는 굵고 곧게 서며 가지가 많다. 잎은 잎자루가 짧고 피침모양이다.

6~8월 개화. 자잘한 꽃이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200만부가 넘게 팔린 이 장편소설이 나오기 전에 싱아는

사람들에게 그리 친숙하거나 사랑받는 식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소설에서 싱아는 자연과 하나였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상징한다.

 

주인공인 어린 박완서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 초등학교 친구들과 

아카시 꽃을 따먹다가 그 비릿한 맛에 비위가 몹시 상하자

새콤한 싱아를 찾는 대목에서 이 베스트셀러의 제목이 탄생한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런데 싱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의구심이 들 것이다.

소설에서는 고향의 냇가나 길가에 싱아가 지천으로 많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싱아는 저지대에도 있지만 건조한 산지에서 흔히 자라며,

이 식물의 종소명이 높은 산을 뜻하는 alpina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라고 싱아를 그리워하는 구절에서도

줄기가 녹색인 싱아와 소설의 싱아는 다른 식물임을 눈치 챌 것이다.

 

소설에 묘사한 대목들과 식물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대조해보면

박완서의 싱아는 들과 마을 주변에 흔한 수영이었을 걸로 짐작된다.

수영과 싱아는 같은 마디풀과의 식물로 새콤한 맛이 비슷하고,

박완서의 고향인 개성지방에서는 수영을 싱아로 불렀기 때문이다.

 

그것이 싱아이건 수영이건 작품에 조금도 흠이 될 수는 없지만

문학과 식물분류학 사이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6.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