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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정처없는 곳에서

무늬만 보아도 서늘한 범부채


 


범부채

Iris domestica (L.) Goldblatt & Mabb.


산과 들의 풀밭에서 자라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m 정도.

넓은 칼 모양의 잎이 좌우로 어긋나며 줄기 밑 부분을 감싼다.

7~8월 개화. 가지 끝에 지름 4~5cm의 꽃이 3~4개 핀다.

꽃은 6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에 붉은 점들이 있다.

 

 



 

산중에 밤이 오자 대호(大虎)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한다,

메뉴를 사람으로 하되 기왕이면 깨끗한 선비를 잡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때 산 아래 마을에서 도덕군자로 이름높은 선비 북곽(北郭)선생은

동리자(東里子)라고 하는 미모의 과부 집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이 여인은 행실이 정숙하다고 열녀 표창까지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비가 각각 다른 아들을 다섯이나 두었으니 참 괴이한 일이었다.

이 아들들이 방안을 엿보고서는 선비가 밤중에 열녀를 유혹할리가 없으니

필시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 생각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북곽선생은 정체가 탄로날까 두려워 머리를 다리 사이에 넣어

귀신인 척하고 급히 도망치다 똥구덩이에 빠져 겨우 기어 나왔으나,

그 앞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어 머리를 땅에 박고 목숨을 빌었다.

깨끗하리라고 믿었던 선비가 지저분한 행실에 똥까지 뒤집어 쓰자

입맛이 싹 떨어져버린 대호는 인간들의 위선을 한참 꾸짖고 가버렸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될 때까지도 머리를 땅에 붙이고 싹싹 빌고 있던

북곽선생을 발견한 농부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며 또 점잖을 떨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소설 호질(虎叱)의 줄거리였다.

호랑이에게 혼쭐이 났던 북곽선생이 범부채의 꽃을 봤다면

한여름에 부채질을 하지 않아도 등골이 서늘했으리라.

 

범부채는 꽃에 범 무늬가 있고 잎이 부채처럼 생겨서 유래한 이름이다.

꽃에 있는 범 무늬는 호랑이 무늬라기보다는 표범무늬와 비슷하다.

호랑이가 북곽선생을 훈계하는 내용 중에는

범은 표범까지도 동족으로 여겨 잡아먹지 않는데,

인간은 인간을 죽이는 잔인한 종족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범부채의 잎은 제갈공명이 들고 다니던 학우선(鶴羽扇)을 닮았다.

종이가 귀하던 오랜 옛날에는 부채를 새의 깃털로 만들었는데,

범부채의 잎차례는 거의 평면이어서 새깃털 부채와 비슷하다.

 

범부채는 부채 없이 견디기 힘든 한여름에 꽃이 피고,

범나비라고도 불리는 호랑나비가 이 꽃을 즐겨 찾는다.

이름만 들어도 서늘해지는 범의 무늬까지 있으니

이래저래 재미있고 잘 붙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6.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