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정처없는 곳에서

대리곡사(代理哭士)처럼 보이는 절국대


 



절국대

Siphonostegia chinensis Benth.

 

산비탈의 풀섶에서 자라는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30~60cm.

줄기 중간 이하의 잎은 마주나고 위에서는 어긋난다.

7~9월 개화. 꽃은 잎겨드랑이에 1개씩 옆을 향해 달린다.





  

절국대라고 불리는 뜻 모를 이름의 식물이 있다.

그 이름의 유래나 의미를 밝힌 자료는 찾지 못했고

다만 옛날에 벌곡대라고 불리다가 변음이 되었다는 기록만 볼 수 있었다.

 

이 꽃을 보노라면 눈물을 펑펑 쏟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앞에서 보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곡을 하는 자세로 보이기도 하고,

꽃 안쪽이 붉어서 피를 토하며 우는 느낌마저도 든다.

그래서 이 꽃 이름이 대곡(代哭)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요즘 대리기사가 있듯이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대리곡사(代理哭士)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상가집에서 돈을 받고 대신 울어주는 사람인데,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서 대리기사를 본떠서 만들어 본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장례문화가 크게 간소해지면서 대리곡사도 슬며시 사라졌고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눈물은 흘려도 곡을 하는 집안은 보지 못했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6,70년대만 하더라도 7일장이 보통이었다.

그 시절에는 사람을 시켜 동네마다 부고를 전하는데 며칠이 걸렸고

 문상을 가는데도 며칠 동안 걸어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만 해도 상주들은 일주일동안 문상객을 맞을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곡을해야했으니 그 고충이 오죽했으랴.


 

그보다 더 옛날에는 장례기간이 훨씬 길었을 것이고,

상주는 장례를 마칠 때까지 곡을 하느라 탈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양반들이 효자일수록 몸을 상하는 일이 많다는 명분을 들어

대신 곡을 하는 사람을 두어도 좋다는 상례규정을 만들기까지 했다.

옛날에는 곡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곡비(哭婢)라고 불렀다.


이런저런 사실과 배경을 엮어 절국대를 위한 전설을 하나 지어바친다.

옛날에 가난했지만 효성이 지극했던 선비가 부친상을 치러야 했다.

곡비를 쓸 수 없었던 이 효자가 장례가 끝날 때까지 절절하게 곡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탈진하여 자신도 아버지의 무덤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이듬해에 그 무덤에 수많은 곡비, 즉 대리곡사를 닮은 꽃이 피어났다.


2016.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