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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정처없는 곳에서

기묘한 곳에 자리잡은 청닭의난초


 


청닭의난초

Epipactis papillosa Franch. & Sav.


숲속의 석회질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70cm. 전초에 털이 많다. 7월 초순 ~ 8월 초순 개화.

꽃의 크기는 9~12mm 정도로 조밀한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경기, 경북, 강원도, 백령도 등지에 드물게 분포한다.



  

1637년 정월, 왕이 희멀건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이어갈 때,

조선의 군사들은 성벽을 지키며 얼어 죽고 굶어 죽어갔다.

왕을 구하러 팔도에서 급히 꾸려온 군대는 성을 포위한 청의 군대와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각개격파 당하여 흩어졌다.

성은 견고했으나 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과 절망으로 쓰러져갔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비탄의 성벽을 따라 청닭의난초가 핀다.

보통 닭의난초는 노란 꽃잎에 붉은색 무늬의 꽃이 피지만,

청닭의난초는 꽃이 푸른색을 띠어서 앞에 푸를 자가 붙었다.

닭의난초는 꽃의 색깔이 닭의 그것과 닮아서 유래한 이름일 것이다.

 

닭의난초도 그리 흔치 않지만 청닭의난초는 그보다 더 희귀한 꽃이다.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꽃이 하필 청나라 군대에 시달리던 바로 그 성벽에서

청닭의난초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니 이런 기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더구나 이 꽃이 자리 잡은 동쪽 성곽은 청군(靑軍)의 공격이 가장 심했던 곳이다.

성의 동쪽에는 성안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벌봉이 있어서,

청군은 이곳에 대포를 올려놓고 쏴대며 곧 성을 삼킬 듯했다.

  

  

닭의난초가 그저 평범하고 화사한 색의 꽃을 피우는데 비해

청닭의난초는 연한 녹색의 꽃이 청순한 느낌을 주지만,

참담했던 역사는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꽃을 바라보게 두지 않는다.

비탄 속에 스러져간 군사들의 절규가 걸음마다 발목을 잡을 때

그들의 넋이 꽃으로 환생한 건 아닐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15. 10. 27

 


 



닭의난초

Epipactis thunbergii A.Gray

 

숲가 풀밭이나 숲 속 습지에서 자란다. 높이 20~70cm.

옆으로 기는 굵은 땅속줄기의 마디에서 수염뿌리가 나온다.

6~7월 개화. 꽃의 크기는 1.5cm 정도이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