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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양지바른 들에서

사람의 향기를 좋아하는 댑싸리

 

 

댑싸리

Kochia scoparia (L.) Schrad. var. scoparia

 

농가 주변에 자라는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1~1.5m.

줄기와 가지가 곧게 서고, 길쭉하고 자잘한 잎이 달린다.

7~8월 개화. 씨는 약용(지부자,地膚子), 빗자루로 만들어 썼다.

[이명] 공쟁이, 대싸리(북한명), 비싸리

 

 

 

 

 

 

 

 

'농가월령가'는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丁學游)가

농가에서 다달이 해야 할 일을 쓴 장편가사다.

이중에 8월령, 양력으로 치면 9월에 해당하는 달의 가사에

‘댑싸리 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댑싸리라는 이름은 이 풀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이

작은 대나무 숲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으로 짐작이 된다.  


댑싸리로 비를 매는 것을 무슨 일거리처럼 써 놓았지만

낫으로 베어 며칠 말렸다가 한두 군데 묶어주기만 하면

훌륭한 빗자루가 되는 것이니 세상에 이보다 쉬운 일이 없다.

댑싸리는 옛날에 중국에서 들여와 재배했다고 하지만

해마다 집 주변에서 저절로 잘 자라던 식물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뒷간 앞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옛 농촌 마을은 담장이 사람의 키보다 낮고 대문도 없어서

이웃 간에 돌담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았다.

통시(경상도 방언)라고 불렀던 변소도 문짝을 달지 않았고

기껏해야 거적 한 장으로 가려놓을 정도였었다.

그런 허술한 뒷간 앞에 그나마 댑싸리 몇 포기가 자라서

지나는 사람이 민망한 모습을 보지 않도록 가려주었던 것이다.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에 컴컴한 밤에

통시에 가는 일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큰 똥구덩이에 통나무나 널판지 몇 개 걸쳐놓은 정도여서

등불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들은 오줌을

통시 앞에 자라는 댑싸리에 물 주듯이 누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시골에서도 댑싸리를 보기가 어렵다.

재래식 뒷간이 사라지고 밤마다 물주는 사람도 없어져서 일까.

아닌 게 아니라 예로부터 이 댑싸리의 씨앗을 지부자(地膚子)라고 하여

방광염 치료와 이뇨제로 써왔다고 하니 묘하게 관련이 된다.

 

몇 해 전 추석에 고향에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도 할 겸

댑싸리가 자라고 있는 집이 있는지 찾아다니다가

아랫동네 옛 친구 집에서 댑싸리비를 발견했다.

친구는 돈 벌러 간다더니 수십 년 동안 소식이 없고

새색시 같던 친구 엄마는 백발 할미가 되어 있었다.

노인 홀로 어렵게 살아오다 보니 뒷간 가는 길도

변함이 없어서 해마다 댑싸리가 자라났던 모양이다.

 

댑싸리는 월령가에 나온 대로 이미 빗자루가 되어 있어서

그거라도 사진을 찍으려 하니 기어이 가져가라고 하셨다.

마땅히 줄 것도 없는 형편에, 그 빗자루라도 소용이 되는가 싶어

굳이 주고 싶어 하시던 노모의 인정이 고마웠다.

 

이렇게 우리 삶의 주변에서 뒷간의 향기가 사라지듯이

댑싸리도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2010. 12. 6.에 쓰고 2016. 12. 30.에 고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