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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제주도와 울릉도

내 마음의 등불, 등심붓꽃

 

등심붓꽃

Sisyrinchium angustifolium Mill.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0∼20cm.

5~6월 개화. 꽃의 지름 1cm 정도.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전남 지방에 분포한다.

[이명] 골붓꽃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밤에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호롱에는 소주 두 잔 정도의 석유가 들어갔는데

쌀을 주고 석유 한 되를 사면 서너 달을 썼다.

석유를 살 형편이 못되는 집에서는 고쿨을 사용했다.

고쿨은 방구석에 굴뚝모양으로 설치한 작은 아궁이로서,

관솔불을 지펴 방안을 밝히는 원시적인 조명장치였다.

 

어린 시절을 두메산골에서 보낸 나이 지긋한 분들은

관솔불로부터 호롱, 촛불, 남포, 백열등, 형광등, 삼파장 램프까지

원시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조명기구를 다 체험해 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고 종종 허풍을 떨곤 한다.

 

그 시절에는 호롱불에 쓰는 몇 방울의 기름을 아끼려고 방과 방,

그리고 부엌사이에 벽을 뚫어 호롱불 하나로 두 방을 밝혔다.

나와 동생들은 불 빛 가까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어머니와 고모들은 바로 옆에서 바느질이나 길쌈을 했다.

아버지와 삼촌들은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거나 바둑을 두곤 했다.

그리하여 호롱불의 등심은 온 식구를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호롱이나 남포는 박물관으로 가고,

'등심'이라는 말도 이제는 국어사전에나 남아있는 낱말이 되었다.

'등심(燈心)'이란 등(燈)의 중심, 즉 심지에 타는 불꽃이다.

 

 

등심붓꽃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관상용으로 도입되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야화(野化)되어 제주도나 남해안지방의 풀밭에 자리 잡았다.

등심붓꽃은 가운데가 밝은 노란색이고 꽃잎에는 붉은 줄무늬가 있어서

아주 작은 등불이나 불꽃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요즈음 식물도감에는 한자명을 같이 쓰는 일이 드물어 알 수는 없으나,

나는 등심붓꽃을 '등심(燈心)불꽃'으로 기억의 창고에 고이 간직하였다.

그리하여 가끔 등심이 아우르던 지난날이 그리워지면

그 작은 마음의 등불을 밝혀 들고 고향을 찾아 간다.

 

바이런은 '밤은 사랑하라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밤을 대낮처럼 밝히고 바쁘게 살고 있다.

예전보다 밤은 천 배가 밝아지고, 물자도 천 배나 풍요로워지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천만 배나 빨리 소식을 전할 수 있지만

과연 우리는 예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2009. 7월.  꽃이야기 110

 

 

 

 

 

흰등심붓꽃

Sisyrinchium angustifolium f. album J.K.Sim & Y.S.Kim

 

등심붓꽃 군락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변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