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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바닷가에 피는 꽃

번행초의 학명에서 얻은 깨달음

 

번행초

Tetragonia tetragonoides (Pall.) Kuntze

 

바닷가에서 자라는 번행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40∼60cm.

추운지방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하고 한해살이풀이 되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며 잎겨드랑이에 1∼2개씩 달린다.

어린순은 식용, 민간에서는 포기 전체를 위장약으로 쓴다.

한국,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번향

 

 

 

 

번행초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해안에서 흔히 자라는 풀이다.

대체로 따뜻한 지역에 살다 보니 봄부터 늦가을까지 꽃이 피며,

바닷가 모래땅에 살기 때문에 잎에서 약간 새콤한 짠맛이 난다.

 

이 식물의 학명은 테트라고니아 테트라고노이드(Tetragonia tetragonoides)다, 

우리말로는 네 개의 뿔이 난 열매가 달리는 사각형의 풀’ 쯤 된다.

‘4’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tetra'가 두 번이나 들어있으니

도대체 이 식물은 숫자 ‘4’와 어떤 관계에 있는걸까? 

번행초의 꽃은 네 장의 꽃잎과 꽃받침이 있고,

씨앗에 네 개의 돌기가 튀어나와 있으니 숫자 4와 관련성은 충분하다.

 

(번행초 군락. 김태원님 사진)

 

그러나 식물 들 중에서 이런 4수성의 꽃은 무수히 많다. 

번행초 학명의 ‘테트라’에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바닷가에서 ‘테트라...’ 어쩌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테트라팟(tetrapot)이다.

테트라팟은 방파제를 구성하는 네 개의 뿔이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다.

바닷가에 무리지어 번성하는 번행초의 군락을 보면

테트라팟으로 구축된 방파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번행초는 잎들이 120도의 각도를 두고 어긋나기 때문에,

곧게 선 줄기와 같이 보면 테트라팟을 닮은 구석도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모래땅에 자라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풀이

테트라팟처럼 얽혀서 파도와 바람을 견뎌내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도 테트라팟이나 번행초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면

단단하게 얽혀서 그 어떤 역경에서도 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仁, 義, 禮, 智’의 사단(四端)을 중히 여겼지만

고달픈 현대인들에게 그런 덕목은 너무 멀어 보인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인간관계에서 갖추어야할 네 가지는

‘호의好意, 예의禮儀, 신의信義, 성의誠意’ 정도가 아닐까 싶다.

(번행초의 열매도 테트라팟을 닮았다. 오른쪽 사진)

 

번행초, Tetragonia tetragonoides, 네 뿔 달린 열매의 사각형 풀...

나는 부르기 번거로워서 ‘네뿔싸가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사람도 好意, 禮儀, 信義, 誠意, 이 정도의 싸가지가 있으면

바닷가 모래땅의 번행초처럼 삶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평소 생각에 물리 구조나 정신영역의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다보니 이런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

 

 

 

2012. 10. 18. 꽃이야기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