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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바닷가에 피는 꽃

등대풀에서 잃어버린 등잔을 찾다

 

등대풀

Euphorbia helioscopia L.

 

바닷가 모래땅이나 들에 나는 대극과의 두해살이풀.

높이 30cm까지 자라며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온다.

4~5월 개화. 유독식물이지만 약용으로 쓴다.

한국(경기도 이남), 아시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등대대극, 등대초

 

 

 

 

 

등대풀하면 누구나 쉽게 바닷가의 등대를 떠올릴 것이다.

인터넷에서 등대풀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보아도

‘밝은 색의 꽃이 바다를 보고 피어서 등대를 닮았다.’든가

‘바닷가의 등대 옆에서 잘 자란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등대풀 옆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 보아도

뱃길을 밝히는 등대까지는 도무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이 풀이 바닷가 풀밭에 있기는 하지만 내륙의 풀밭에서도 자란다.

더구나 등대는 주로 바닷가의 높은 절벽 끝에 서있으므로,

‘등대 옆에서 이 풀이 잘 자란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 등대풀을 보면 볼수록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근감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의 큰 박물관들과

등대박물관이나 등잔박물관 같은 테마 박물관을 조사한 결과,

삼국시대의 등잔모양에서 희미한 실마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정작 후련한 답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책, ‘한국 식물명의 유래’(이우철, 2005)에

‘등대풀’은 ‘일명’(日名)에서 유래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등대풀’의 일본명은 ‘등대초’(燈臺草, とうだいくさ)다.

 

일본어사전을 찾아보니 ‘등대’는 뱃길을 밝히는 ‘등대’와

‘등잔받침대’라는 두 가지의 뜻으로 나와 있었다.

우리말사전에서도 일본어사전과 같이 두 가지 뜻풀이가 되어 있다.

다만 언어 습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등잔’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등대’(燈臺,とうだい)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하는 것을

일본 속담으로는 ‘등대 밑이 어둡다’라고 한다는 말이다.

옆에 있는 책 속에 답이 있는 것을 수 천리를 돌아오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언젠가는 이 풀의 이름을 ‘등잔풀’로 고쳤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풀을 보고 바다의 등대와 엮어보려는 어설픈 상상보다

수천 년 전 우리의 아름다운 토기등잔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런 풀이름의 유래를 알아볼 때마다

‘삼천리 산천초목마저 일제강점기를 거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2011. 7. 24.  꽃이야기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