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풀
Trifolium lupinaster Linne
고산의 풀밭에 나는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cm 가량.
잎은 손바닥모양, 작은 잎이 5~7장으로 길쭉하게 바퀴살처럼
갈라져서 돌려나기 잎처럼 보인다. 6~9월 개화.
한국(북부), 일본, 동북아시아,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들꽃’은 없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이 있기 전에는 어떤 꽃도 이름이 없었다.
‘달구지풀’도 한 세기 전에는 이름 없는 풀이었을 것이다.
이 풀은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높은 곳에 살아온 탓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이름도 얻지 못했으리라.
이 식물의 이름은 1937년에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들 때
일본 이름을 의역하면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백두산 고원의 달구지풀, 줄기를 둘러싼 잎 모양이 달구지의 차축을 닮은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풀의 일본명은 ‘샤지쿠소(車軸草)’이고 우리말로는 ‘굴대풀’이 된다.
일본은 서구문물을 일찍 도입해서 ‘차축’이 귀에 익었겠지만
기계문명이 미처 자리 잡지 못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차축풀’이나 ‘굴대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짐작컨대 당시의 학자들이 고민하다가 그 시대 우리 문명에서
유일하게 굴대가 있는 달구지를 끌고와서 꽃이름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나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듯이
‘달구지풀’이라는 이름은 영 마뜩치가 않다.
'달구지바퀴살'처럼 줄기를 둘러싼 잎의 모양에서
'차축초'라는 이름을 끌어낸 일본명은 겨우 이해가 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술 더 떠서 달구지 몸통까지 얹어 놓았으니
이 풀꽃으로 달구지까지 끌고 가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풀은 높은 산의 초원에서 사는 식물이므로,
평생 달구지를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풀이다.
(백두산 노호배 능선의 달구지풀)
이 풀은 토끼풀속의 식물이므로, 단순하게 생각해서
‘고산토끼풀’이나 ‘가는잎토끼풀’로 이름 지었더라면,
나같은 문외한에게 이런 불평을 듣지 않았을 터이다.
달구지라고는 그림자도 없는 백두산 고원의 달구지풀이나,
한라산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며 제주달구지풀을 만나면
누구라도 이런 볼멘소리 한 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1. 12. 25. 꽃이야기 24
제주달구지풀
Trifolium lupinaster f. alpinus (Nakai) M.Park
한라산의 고산초원에 나는 여러해살이풀.
달구지풀보다 전체적으로 작다. 높이 15c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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