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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0년 2월 27일 전북 남부지역 탐사

 

 

오늘 날씨를 보니 꽃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후 늦게 비 예보가 있었는데 아침부터 하늘이 많이 어둡다.

오늘 같은 날은 햇볕이 없어도 피어있는 꽃을 찾아야 한다.

 

 

윗 동네에 사는 고마운 분의 도움을 받아 앉은부채들을 만나러 갔다.

이 식물은 발열작용을 하기 때문에 눈을 녹이고 올라오는 모습을 찍어야 제격이다.

그러나 어쩌랴 목요일 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잔설까지 다 지워버린걸....

그래, 오늘은 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봄을 찍으러 가는 거야!

 

 

앉은부채가 많이도 올라왔지만 속에 꽃봉오리를 달고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떤 짐승이 따먹은 것이다. 꽃봉오리만 따먹은 솜씨로 보아서는 주둥이가 투박한 멧돼지는 아닐 것이고...

주변에 토끼똥이 더러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선은 토끼를 유력한 용의자로 짐작해보았다.

그리고 밤나무가 많은 지역이라서 다람쥐의 소행일 수도 있겠다.

앉은부채도 이른 봄에는 독성이 있다는 데 야생동물들은 무슨 해독제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앉은부채의 싹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양파나 마늘이 상한 냄새라고나 할까....

별로 맛도 없을 것 같은데 숲속 동물이 지금 굶주린 탓에 아무거나 파먹는 모양이다.

 

 

눈은 없지만 작은 폭포옆에 좋은 모델을 발견해서 아쉬운대로 몇 컷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얼레지, 복수초, 꿩의바람꽃, 쇠뿔현호색, 백양꽃이 사는 곳을 들었다.

때맞춰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동네로 돌아오니 겨우 세시였다.

아쉬운 마음에 푸릇푸릇한 곳을 뒤져보니 별꽃이 많이도 피어 있었다.

제대로 핀 것이 아니라 햇볕이 나지 않아서 꽃잎을 반만 열고 있었다.

 

 

별꽃을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수술과 암술이 동시에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많은 꽃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자가수분을 피하는 것 같다.

예컨대 별꽃의 수술이 빨갛고 도톰할 때는 다른 꽃에 꽃가루를 주는 시기이다.

 

 

수술의 꽃밥이 붉은 빛을 잃고 쇠락해지면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가 내밀기 시작한다.

이제 이 꽃은 다른 꽃으로부터 꽃가루를 받는 때일 것이다.

많은 꽃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성전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에 오자마자 꽤 많은 봄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2010.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