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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0년 2월 21일 동네 한 바퀴

 설 연휴에는 모처럼 모인 식구들 눈치보느라 꽃을 보러 가지 못했다.

지난 목요일에 눈이 왔었는데, 혹시나 홍암골 잔설이 남아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갔더니

눈은 흔적도 없고 복수초만 십여 개체가 소담스럽게 피고 있었다.

한 오년전에 영흥도에서 생전 처음 복수초를 보았었다. 두어 개체가 꽃봉오리만 노랗게 보이는 정도였었다. 

귀한 꽃을 첫 대면한 기쁨에 꽃봉오리 하나를 수십 장이나 찍었었는데,

그 날 오늘 같은 복수초 밭을 보았더라면 수천 장이라도 찍었을 것이다.

오전 10시경이라 꽃이 대부분 오므리고 있는 상태여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고 구산리로 향했다.

구산리의 복수초들은 핀 것도 있었지만 아직 이른 편이었다.

 

 

마을 입구에 박주가리가 한창 씨앗을 날리고 있어서 처음 카메라를 꺼냈다.

이른 봄 바람에 박주가리의 씨앗들이 어미를 떠나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그러한 모습은 가벼운 감동과 경이로움을 준다.

 

 

언젠가 저 박쪼가리 속에 든 씨앗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볼 요량이다.

일주일에 한 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에 저 씨앗을 세고 있기에는

바쁜 마음이 허락해주지를 않는다.

 

 

그곳에 앉은부채는 올해도 어김없이 피고 있었다.

작년보다 며칠 정도 발육이 늦은 듯하다.

이것도 일주일은 지나야 불염포 속의 부처님을 제대로 뵈올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자그마한 아기 부처님을 만나서

아쉬우나마 검지 손가락의 희열을 느껴보았다.

 

 

작년에도 보았던 바위틈 아래 올해도 두 포기가 돋아났다.

여러해살이풀이니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앉은부채를 뒤로 하고 나서도 아직 해가 중천이다.

들판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밭둑을 살펴보다가 광대나물 몇 송이가 핀 것을 발견했다.

일찍 나온 꿀벌도 나의 취미생활을 거들어 주었다.

 

 

몇 송이 피지 않은 광대나물이라 벌이 다음에 앉을 꽃이 뻔하다.

찍을 것이 별로 없을 때도 이런 좋은 점이 있는 것이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니 오후 4시 40분, 아직도 해가 꽤 남았다.

그냥 집으로 가기가 아쉬워서 뒷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오후 햇볕이 잘 쪼이는 양지 구석에 자주광대나물이 피기 시작했다.

백 포기는 족히 피었을성 싶다.

 

 

계절은 결코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대자연도 대체로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

봄은 이만큼이나 가까이 온 것이다.

 

 

날이 저물며 큰개불알풀이 꽃잎을 접고 있다.

큰개불알풀은 보통 사흘동안 접었다 폈다 하다가

할 일을 다하면 미련없이 꽃을 떨군다.

꽃이 떨어질 때는 접지 않은 상태에서 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