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주나무 Juniperus rigida Siebold & Zucc.
건조한 산지나 암석지대에서 최대 10m까지 자라는 측백나무과의 상록소교목.
바늘잎의 길이는 1.2~2cm이고 보통 세 개씩 돌려나며 횡단면이 V자 모양이다.
암수딴그루(드물게 한그루)로 4월에 2년지의 잎겨드랑이에 구화수가 달린다.
내 기억으로는 여덟 살 쯤부터 소를 몰고 다녔다.
어른들이 농사에 바쁠 때 아이가 사람 구실을 하는 건 소를 먹이고 꼴을 베는 일이었는데,
자기 체중의 수십 배나 되는 큰 소를 부릴 수 있었던 건 소의 코를 꿴 고삐를 쥔 때문이었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양쪽 콧구멍 사이를 뚫어 코뚜레를 꿰는 대사를 치러야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성년식을 치르는 것이고 그 때부터 송아지가 아닌 소 대접을 받는다.
코뚜레 구멍을 뚫는 건 송아지에게 끔찍한 고통이므로 순식간에 끝내야 하고
대개 마을마다 그것을 번개같이 해치우는 코뚜레 도사가 한 사람은 있었다.
코뚜레는 재질이 단단하고 많이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 노간주나무 줄기로 만들었다.
무슨 약점을 잡혀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코 꿰였다’라고 하는 표현은
덩치 크고 힘이 센 소라도 코가 꿰이면 아이한테도 꼼짝 못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노간주나무는 코뚜레로 변신하여 인간이 소를 조종하는 연결고리가 되는 셈이다.
소에게는 악역을 맡은 노간주나무의 본래 모습은 수행자 같은 풍모를 지녔다.
수직으로 선 긴 원추형의 자태는 장대하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단정하고 야무지다.
그곳이 깊고 높은 산이거나 마을 주변의 낮은 산이거나 모두 한 모습처럼 닮은꼴이다.
다른 나무들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절벽 바위틈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늘 푸르게 서 있다.
노간주나무를 보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경구가 떠오른다.
당나라 때의 임제(臨濟, ?~867) 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이다.
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자 삶의 터전이고
作主란 어떠한 조건에서도 본래 모습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산다는 의미다.
어떤 곳에서도 그 다운 모습대로 사는 노간주나무에게 썩 어울리는 말이다.
예로부터 ‘소 코뚜레를 문이나 안방에 걸어 놓으면 만사형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아마도 힘센 소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나온 말이지 싶다.
경운기가 소가 하던 일을 대체해서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코뚜레를
요즈음 일종의 부적이나 장식품으로 찾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노간주나무는 어디서나 제 본 모습과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지만
코뚜레 역시 소의 주인이 되는 도구이니 이래저래 隨處作主의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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