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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자주 보는 떨기나무

붉나무에 대한 편견과 오해

붉나무             Rhus javanica L.

 

전국의 낮은 산지에서 5m 정도 높이로 자라는 옻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잎은 7~13개의 작은잎이 달린 깃꼴겹잎이고 중심축에 날개가 발달한다.

암수딴그루로 8~9월에 원뿔모양꽃차례에 자잘한 꽃들이 달린다.

 

 

 

 

어릴 적에 붉나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 트라우마로 수십 년을 거북하게 지냈다.

나무 이름도 모르던 시절에 잎에 복주머니처럼 달린 것이 궁금해서 속을 갈라 봤더니

수천 마리의 까만 벌레들이 기어 나와서 기겁을 했던 것이 붉나무와의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동네 형이 옻나무라고 잘못 알려줘서 더욱 붉나무를 멀리하게 되었다.

 

정말 붉나무가 무서워 진 까닭은 한센병 환자들 때문이었다.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그들은 무리지어 유랑걸식하던 문둥이라고 불렸고,  

아이들을 잡아서 간을 빼먹어야 병을 고친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이 떠돌았다.

학교를 파하고 고갯길을 넘어오던 길에 한 무리를 만나서 질겁하고 줄행랑을 쳐서

한 시간이나 더 걸리는 길을 돌고 돌아서 집으로 온 적도 두어 번 있었다.

 

하필 그 무렵 붉나무의 잎에 두드러기처럼 솟아난 돌기들이 문둥이들의 피부를 떠올리게 했고

스치기만 해도 옻이 오른다는 얘기도 들은 터라 자연스레 문둥이와 붉나무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학교 다니는 길에 붉나무가 있으면 문둥이 피하듯 멀찌감치 돌아서 갔다.

그러다보니 가을에 유난히 붉게 물 드는 단풍도 무서운 느낌이 들었고

시커먼 열매에 허옇게 백태가 낀 듯한 모습도 문둥병 증세로 여겨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붉나무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붉나무는 가을의 초입에 가장 먼저 붉게 단풍이 들어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옻나무와 근연종이기는 해도 옻 성분은 약해서 민감한 체질이 아니면 괜찮다.

 

붉나무 잎에는 이부자진딧물이 기생하면서 아이 주먹만한 벌레집을 짓는데,

예전에는 그것을 오배자(五倍子)라고 하여 채취해서 팔았다.

오배자는 타닌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가죽가공이나 머리염색약의 원료로 썼다.

그리고 『동의보감에는 각종 피부염과 입안이 헌 증세에 효능이 있다고 나와 있다.

 

붉나무에는 팥알 같은 수많은 열매가 달려서 가을에는 표면이 하얗게 변한다.

열매에 묻은 하얀 밀가루 같은 것에 칼륨염이 들어있어서 약간 짠맛이 나는데,

소금이 귀한 산촌에서는 이 열매를 삶은 물로 두부의 간수를 만들고 배추를 절였다.

붉나무를 나무 소금이라는 의미로 염부목(鹽膚木), 또는 목염(木鹽)이라고도 불렀다.

 

알고 보면 참 고마운 나무인데 어리고 무지한 소치로 거의 한 평생을 멀리해 왔다.

붉나무처럼 오해와 편견으로 멀리하고 있는 사람은 혹시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미안했다. 붉나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