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나무 Viburnum carlesii Hemsl.
볕이 잘 드는 산지에서 2~3m 높이로 자라는 산분꽃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4~5월에 가지 끝에서 길이 1cm정도의 꽃들이 취산꽃차례로 모여 달린다.
섬과 해안지대의 꽃부리가 짧고 잎이 넓은 생태형을 섬분꽃나무라고도 한다.
사월 중순은 새순이 제법 잎 모양을 갖추는 때다.
숲은 여전히 성긴 그물처럼 볕이 드는 곳이 많아서 노루귀와 현호색이 결실을 준비하고
초록의 새 잎들은 지난해의 낙엽과 퇴색한 풀들을 서서히 점령해가는 시기다.
이즈음에 분꽃나무는 새 잎을 펴고 살짝 분홍빛을 띤 하얀 꽃을 피운다.
분꽃나무의 꽃은 홍조를 띤 해맑은 봄처녀의 얼굴에 비유하고 싶지만
처녀라고하기에는 은은하면서도 짙은 분 향기 때문에 새색시라고나 해야겠다.
‘화장한다’ 대신 ‘분을 바른다’라고 말하던 시대에 처녀들은 분을 바르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의 도시 여성이나 문명사회에 먼저 진입한 여성들은 화장을 했겠지만
시골의 여인들은 오직 시집가는 날부터 며칠 동안만 일생에 단 한 번 분을 발랐다.
적어도 내 어릴 적 고향마을의 처녀로부터 할머니까지는 분명히 그러했다.
새댁의 얼굴색이 나는 분꽃나무의 꽃은 그 시절의 은근한 분 냄새를 품고 있다.
요즘 화장품이나 향수에서 나는 이국적이거나 고혹적인 향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그윽하며 그야말로 고전적인 옛 여인의 향기다.
봄마다 이 새색시의 문향(聞香)을 위해 나들이를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 향기를 안타깝고 그리운 이별의 향기로 간직한 친구가 있다.
어릴 적에 누이가 시집갈 때 처음 맡아 본 분 냄새가
그에게는 사랑하는 누이와 생이별한 애틋한 추억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 이 향기를 맡으면 멀리 시집간 누이가 보고 싶어서
분꽃나무 꽃이 핀 곳을 멀찌감치 돌아서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의 규범이 엄격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던 시대에는
결혼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왕래의 단절과 이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꽃을 ‘분꽃나무의 꽃’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분꽃이 따로 있어서다.
화단에 심어서 가꾸던 분꽃은 야생에도 흔히 번져서 마을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분꽃의 이름은 분꽃나무와는 달리 까만 씨앗 속의 하얀 분가루에서 유래된 듯하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면서 분꽃 씨앗을 톡톡 두드리면 하얀 분말이 터져 나왔다.
그 분꽃과 분꽃나무의 꽃은 많이 닮았고 모두 아련한 옛 추억을 소환해주는 꽃이다.
산분꽃나무 Viburnum burejaeticum Regel & Herder
경기 연천, 강원 설악산, 평창 이북의 산지에서 2~4m 높이로 자라는 갈잎떨기나무.
잎은 분꽃나무에 비해 길쭉한 타원형이고 끝은 뾰족하며 자잘한 톱니가 촘촘하다.
5~6월에 가지 끝에서 길이 7mm 가량의 꽃들이 지름 5cm 정도의 꽃차례를 이룬다.
분꽃나무의 수술은 꽃부리 안쪽 깊이 있고 산분꽃나무는 꽃부리 밖으로 돌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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