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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주변의 큰키나무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아까시나무      Robinia pseudoacacia L.

 

과거에 녹화용으로 심었던 것이 널리 토착화된 콩과의 갈잎큰키나무.

4~9쌍의 작은잎으로 이루어진 깃꼴겹잎이며, 탁엽이 변한 가시가 있다.

5월에 새 가지에서 1.5cm 정도의 꽃들이 총상꽃차례로 모여 달린다.

 

 

 

 

 

아카시아의 작은 잎이 열아홉 장인 걸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하나씩 따내는 놀이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심할 때 따먹던 아카시아 꽃의 달달하고 향긋한 맛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카시아의 바른 이름이 아까시나무라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국어사전에서 아카시아를 찾아보면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일컫는 말로 나온다.

아까시나무가 정확한 이름이고 아카시아는 잘 못 알려진 이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카시아로 부르므로 그렇게 써도 괜찮다는 함의가 있는 듯하다.

아카시아나무는 같은 콩과의 나무로 주로 남반구에 분포하는 식물로 알려졌다.

노란색 상의에 녹색 팬츠가 눈에 익은 호주 국가대표선수의 유니폼은

호주의 국화(國花)아카시아나무 꽃이 노란색이어서 유래한 색상이라고 한다.

 

(호주의 국화인 아카시아나무)

현재의 국명 아까시나무는 종소명인 pseudoacacia에서 유래한 걸로 보인다.

개아카시아로 옮길 수도 있는 이름인데 뭔가 느낌이 오는 아까시로 작명한 듯하다.

가시가 많은 이 나무를 ! 가시!’라고 부르고 그렇게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오월 좋은 계절에 아까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 달콤한 향기에 절로 취한다.

그 향기는 어쩌면 청년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아가씨의 향기일는지도 모른다.

1976년에 등장한 아카시아껌도 아가씨의 향기에 비유한 로고송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졌고 여성만을 위한 껌이란 타이틀로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미국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는 1890년대에 사가키란 일본 사람이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해서 인천 공원에 심은 것이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생장과 번식력이 좋아서

광복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심어져 황폐한 민둥산을 녹화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드디어 국민 동요 과수원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박화목 선생의 동시를 컨추리송 가수였던 서수남이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한 때 아까시나무는 지나친 번식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특히 조상의 무덤까지 뿌리를 뻗어 번식하는 괘씸죄는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골칫덩이였던 아까시나무가 주변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아까시나무 퇴치에 힘쓰기도 했겠지만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이 나무는 대개 이삼십 년이 지나면 성장이 둔화되어 자연도태가 된다고 한다.

 

아무튼 아까시나무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고 풍부한 밀원식물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헐벗었던 산하를 단기간에 푸르게 만들어준 고마운 나무다.

지금은 토종식물과 평화협정이라도 맺은 듯 과도한 번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해서

그 옛날 추억도 많은 아카시아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