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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주변의 큰키나무

주경야독의 불을 밝혔던 쉬나무

쉬나무 Tetradium daniellii [benn.] T, G. Hartley

 

낮고 건조한 산지나 민가 주변에서 7m 정도 높이로 자라는 운향과의 낙엽 소교목.

암수한그루, 드물게 암수딴그루로 7~8월에 지름 10cm 정도의 편평꽃차례로 꽃이 핀다.

검고 윤이 나는 종자는 38%가 기름 성분이어서 등유나 머릿기름을 짜냈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이사를 갈 때 두 가지 나무 씨앗을 챙겨갔다고 한다.

바로 쉬나무와 회화나무의 종자였다.

쉬나무는 씨에서 등불을 켜는 기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경야독에 요긴한 나무였고,

회화나무는 수형이 장쾌하고 품위가 있어서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쉬나무는 드물지도 흔하지도 않고 그 모양도 수수한 나무다.

무심코 보면 흰 꽃이 피는 비슷비슷한 나무들 중의 하나여서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온통 잎만 무성한 7월에 거의 유일하게 풍성한 꽃을 피워 벌들의 집합소가 된다.

벌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 영어로는 벌을 두 번이나 넣어 Beebee-tree라고 한다.

게다가 편평꽃차례를 이루는 자잘한 꽃들이 조금씩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한 달이 넘도록 벌들을 즐겁게 출근하게 해주는 훌륭한 밀원식물이다.

 

쉬나무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자료에서도 상반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어떤 도감에는 암수한그루로, 어떤 책에는 암수딴그루 식물로 나와 있다.

마침 동네 부근의 산에 쉬나무가 흔한 편이어서 유심히 관찰해보니 모두 암수한그루였다.

그러나 다른 자료를 보면 어떤 지역에서는 암수가 다른 그루로 자라기도 하는 모양이다.

 

쉬나무는 수유(茱萸)나무가 발음이 편하게 변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쉬나무 , 쉬나무 자를 쓰는 싱거운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그냥 수유나무라고 부르는데 국가적으로 이 나무 심기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경제난으로 어려운 북한에서 쉬나무는 꿀, 식용유, 약재, 비누 등

주민생활에 요긴한 물자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식물이기 때문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소등(燒燈)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소등은 요즘 말로 횃불이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은 세계사적으로 혁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쉬나무 열매의 기름은 선비의 밤을 밝혀 나라의 지성을 기르기도 했지만

지배계층의 학정이나 횡포에 저항하며 떨쳐 일어난 횃불을 밝히기도 했을 것이다.

그 내력을 더듬다보니 이 나라의 지성과 혁명의 불을 밝혔던 쉬나무가 제법 대견하다.

 

2020.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