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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주변의 큰키나무

한여름 밤의 행복 관솔불

소나무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전국에 분포하는 늘푸른큰키나무. 높이 30m, 지름 1.5m 정도까지 자란다.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수구화수는 새가지 끝에, 암구화수는 그 위에 달린다.

수형에 따라 곧은 수형을 금강송, 넓게 퍼진 수형은 반송, 가지가 처진 모양은

처진소나무로 세분하기도 하나 모두 소나무의 품종이나 개체변이로 본다.

 

 

 

소나무는 옛 사람들의 삶을 꾸려가는 데에 가장 많이 베푼 나무다.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큰 쓰임은 집을 짓는 최고의 목재였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대궐로부터 백성들의 초가집까지 대부분 소나무로 지어졌다.

음식을 장만하고 방을 덥히는 데에도 가장 많이 쓰였던 땔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면의 보금자리인 관()이 되어 삶을 마친 사람의 사후까지도 헌신했다.

 

근거도 모르면서 나는 소나무의 최고라는 의미로 막연하게 믿는다.

우두머리거느리다라는 뜻을 품은 한자 솔()을 소나무로 연상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자 솔 송()은 상대를 높일 때 쓰는 에 나무 변을 붙인 글자이므로

이로 미루어 보아도 옛 사람들이 얼마나 소나무를 높이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강원도 영월군 솔고개의 소나무)

애국가 2절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으로 시작한다.

소나무는 후렴에서 반복되는 무궁화를 빼고는 애국가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나무로,

모진 바람과 서리에도 변함없이 꿋꿋한 우리 민족의 기상에 비유되는 나무다.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절명시라고도 할 수 있는 시조에서 소나무는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소나무는 이렇게 높은 기상과 곧은 절개를 자랑하는 나무만은 아니었다.

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자신의 속껍질로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정 많은 나무였다.

송기(松肌)라고 하는 그 속껍질은 소나무 가지가 한창 물을 끌어올리는 여름에 먹었다.

송기는 성장이 왕성한 10년생 쯤 되는 소나무의 끝에서 두 번 째 마디를 잘라내어

낫으로 겉껍질을 얇게 벗겨내고 하모니카처럼 양손으로 잡고 뜯어 먹었던 간식거리였다.

 

한여름 밤에 마당에 관솔불을 피워놓고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시절도 그립다.

관솔은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인데 불이 밝고 오래 탄다.

무더운 여름철에 농촌에서는 마당에 모깃불과 관솔불을 피워 놓고 저마다의 잔일을 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고 어머니와 고모는 설거지를 하고

할머니는 곰방대를 물고 물레질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은 적어도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 민족의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이었다.

단순하게 옮기자면 소중한 시간정도가 되겠지만 서양 문화에서는

하루 일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 사람들의 퀄리티 타임에 벽난로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면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에는 소나무 향기가 짙은 관솔불이 중심에 있었다

그 시간들이 그립고 아련한 것은 단순히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실종되다시피 한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이 간절한 시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