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향나무를 보기 어려운 까닭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L. 

 

강원 삼척, 영월, 경북 의성, 울릉도의 암석지대에서 자라는 늘푸른큰키나무.

비늘잎과 바늘잎의 두 가지 잎이 섞여 나는데 개체에 따라 비율이 다르다.

암수딴그루(드물게 암수한그루)로 구화수의 길이는 3~5mm로 자잘하다.

 

 

 

 

우리나라의 토종 향나무는 대다수가 아찔한 벼랑에 붙어 산다.

울릉도 도동항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절벽 위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향나무와

섬 서쪽에 거대한 상어지느러미처럼 솟은 통구미 절벽의 군락은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육지에서는 삼척과 영월의 절벽지대에서 드물게 향나무를 볼 수가 있다.

 

(울릉도 도동항 절벽 위의 향나무)

그렇다고 향나무가 절벽에 붙어 그림처럼 폼을 재며 사는 걸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내륙에서는 궁궐이나 사찰, 그리고 양반들의 정자나 묘소에 수백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향나무 거목들이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절벽이든 궁궐이든 양반의 소유지든 한마디로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사는 나무다.

 

향나무가 여느 산이나 들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은 쉽게 짐작이 간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향나무 토막을 간수하다가 제사 때마다 조금씩 깎아내어 썼다.

향을 피워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강신(降神)례가 제사의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향을 그렇게 썼으니 흔치 않은 나무가 자연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경북 청송 장전리 영양남씨 입향시조 묘소의 향나무. 천연기념물 313호)

제사 때에만 그렇게 썼다면 유교적 전통 때문에 향나무가 수난을 당했다고 하겠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종교의식이나 그와 비슷한 행사 때는 향을 피웠다.

지역에 따라 향을 피우는 재료는 달랐겠지만 그 목적은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향은 신성한 행사를 위한 탈취제나 방향제로써 쓰였을 개연성이 높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메주 뜨는 냄새할아버지 곰방대 냄새, 농사일에 지친 땀 냄새,

아기들 오줌똥냄새, 술 익는 냄새, 등등 온갖 퀴퀴하고 골골한 냄새의 경연장과 같았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냄새환경에서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면 집안 분위기가 일시에 신성해졌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맑고 향기로운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좋은 향수를 써서 나는 향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과 언어에서 나는 향기다.

그런 향기는 어디서 얻어지는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