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울창한 숲의 거목들

마을을 지켜낸 비술나무

비술나무       Ulmus pumila L.

 

경북 영양 이북의 하천가에서 20m 높이까지 자라는 느릅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수피가 세로로 갈라지며 흰 줄무늬가 생기고 작은 가지가 섬세하게 갈라진다.

3~4월에 잎이 나기 전에 2년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는 5~6월에 성숙한다.

 

 

 

 

경북 영양군에는 주사(做士)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강씨들이 살던 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폐촌이 되었는데

주곡공(做谷公) 이도(李櫂)와 주계공(做溪公) 이용(李榕) 형제가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수해와 바람을 막기 위해 비술나무와 시무나무, 그리고 느티나무를 심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인지천을 연하여 숲이 조성되자 수해로부터 마을과 농토를 지킬 수 있었고,

마을 이름은 두 선비의 호인 주곡, 주계의 주()자에 선비 사()를 붙여서 주사골이 되었다.

 

(주사골의 비술나무 숲)

이 두 선비의 호는 아무래도 숲이 조성되어 마을이 살아난 뒤에 붙여진 듯하다.

두 분의 호에 들어간 지을 자는 무엇을 이루거나 책임을 맡는다는 의미가 있고,

뒤의 , ‘자는 골과 하천을 뜻하므로 그 분들이 한 일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주곡은 고을을 이루다, 주계는 하천을 책임지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두 선비는 비술나무의 생육특성을 잘 알고 이 나무들로 숲을 조성했을 것이다.

숲에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비술나무, 시무나무, 느티나무가 6:2:2 정도로 심어졌는데,

하천 옆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며 줄기가 단단해서 홍수와 태풍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이 숲은 50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두 군데에 조성되었는데 하천이 굽이쳐서

홍수가 나면 마을과 농토에 새로운 물길을 낼 수 있는 취약한 곳이다. 

 

조선시대에 공리공론에 치우쳤던 성리학의 반성으로 일어난 새로운 학풍이 실학(實學)이라면

두 형제의 홍수방지림 조성은 그야말로 실사구시와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모범이라 할만하다.

 

이 숲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비술나무는 열매가 닭의 벼슬을 닮았고,

함경도 지방에서 이 나무를 비술나무로 부르던 것이 조선식물향명집에 수록되었다.

열매 여러 개가 달린 모습은 닭 벼슬을 닮았고 낱개는 미선나무 열매의 축소형이다.

비술나무가 비록 닭 벼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데에는 수긍이 가면서도

마을을 지켜내는 비법이나 비술(祕術)을 발휘한 나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