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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울창한 숲의 거목들

대장간의 추억과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        Fraxinus sieboldiana Blume

 

중부 이남의 산지에서 5~15m 높이로 자라는 물푸레나무과의 큰키나무.

4~5월에 새 가지 끝에서 원뿔모양꽃차례로 흰색의 꽃이 모여 달린다.

물푸레나무는 꽃잎이 없고 꽃받침과 꽃술만 있는 작은 꽃들이 모여 핀다.

 

 

 

 

고향의 냇가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대장간이 차려졌다.

가마는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약간의 보수만 하면 되었고 대장장이는 모루와 풀무

그리고 몇 가지 연장을 지게로 지고 와서 한 열흘 일하고 다음 동네로 옮겨 다녔다.

경상도에서는 대장장이를 쇠를 벼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베름쟁이라고 불렀다.

농부들이 몇 해 동안 일하면서 날이 닳고 무디어진 호미 낫 괭이들을 녹여서

새 것으로 재생시켜 주었는데 공임은 쌀과 보리로 받아갔다.

 

별 구경거리가 없는 산골에서 아이들은 대장간 주변에 모여들었다.

산골 아이들에게는 철기문명의 생생한 현장을 견학하는 학습의 장이기도 했다.

렇다고 매일 쇠붙이를 빼돌려 항아리에다 대장장이의 노후 자금을 비축했던

어린 이항복처럼 갸륵한 뜻으로 대장간 옆에서 얼쩡거린 건 아니었다.

쇠가 귀한 시절이어서 대장간의 하루가 끝나면 엿 바꿔 먹을 쇳조각 하나 남지 않았다.

 

(쇠물푸레나무)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들은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거쳐 각이 선 새 날로 거듭났다.

주문을 의뢰한 농부들은 자신들이 쓸 농기구의 자루는 산에서 직접 마련해왔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지만 녹회색에 희끗희끗한 얼룩이 있는 그 나무가 물푸레나무였다.

괭이나 도끼, 망치처럼 힘을 많이 받는 자루는 반드시 물푸레나무로 만들었고

호미처럼 자루가 짧고 큰 힘을 받지 않는 자루는 소나무나 다른 가벼운 나무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꼴을 베는 낫은 날은 가볍고 자루는 손에 쥐기에 적당한 굵기로 만들었다.

열 살 쯤 되었을 때 아버지를 졸라서 드디어 내가 쓰기에 알맞은 낫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내 손에 쥐어진 물푸레나무 낫자루의 묵직하고도 든든한 느낌과

이제부터는 나도 밥값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뿌듯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쇠물푸레나무)

조선시대에는 죄인을 벌주는 곤장을 재질이 단단하고 묵직한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

물푸레 곤장이 너무 가혹했던지 한 때는 좀 가벼운 나무로 곤장을 대체했다가

범죄가 증가하자 다시 물푸레 곤장으로 죄인을 다스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스름해져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곤장이 되면 안색이 파랗게 질리고 살이 푸르게 물드니 살푸레나무도 된다.

 

물푸레나무는 큰키나무로 분류되지만 농촌 주변의 산에서는 거목을 보기 어렵다.

괭이자루 굵기만큼 자라면 늘 베어져서 농부의 손때를 묻히며 헌신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오십 년 자란 물푸레나무들을 보면서 그래도 너희들은 좋은 시절 만났구나 한다.

 

 

 

 

**  물푸레나무 사진 수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