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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북방 높은 산의 나무

백석의 詩로 읽는 자작나무

자작나무     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 (Miq.) H. Hara 

유라시아의 한 대지역과 함경도의 고원지대에서 20m 정도 자라는 갈잎큰키나무.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잎이 나는 동시에 꽃이 핀다. 수꽃차례는 3~8cm 길이로

아래로 늘어지고 암꽃차례는 길이 2cm 정도의 방망이 모양으로 위로 솟는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민족시인 백석()이 1938년에 함주에서 쓴 백화(白樺)’라는 시다.

함주군은 함경남도의 남쪽 잘록한 부분에 위치한 지방으로

동쪽으로는 동해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루는데, 

대체로 이 지역이 자작나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다.

남한 지역의 몇몇 자작나무 숲은 모두 심어서 가꾼 숲이다.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만주지역을 여행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에 매료되었었다.

자작나무의 매력은 아무래도 하얀 줄기가 무진장하게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 하얀 줄기는 봄의 하늘거리는 신록과 여름의 푸르른 잎들과도 멋지게 어울리고

가을빛 단풍과 겨울에 잎을 모두 떨군 섬세한 가지들은 이국적인 시심(詩心)을 길어올린다. 

 

자작나무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꽃벗들과 백두산 남쪽 자락을 탐사할 때였다.

고산에 비가 내려 음산한 날씨에 일행은 산지기의 외딴 움막을 찾아 따뜻한 물을 청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손짓으로 산지기는 우리의 불쌍한 처지를 파악했다.

그는 자작나무 장작불을 지펴 큰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장작이 자작자작 타들어가는 소리와 향긋한 연기가 일행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렇게 끓인 물로 탄 커피는 자작나무 향기가 짙게 배어 더욱 향긋했다.

 

자작나무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지독한 겨울을 사실사실한 얇은 껍질을 두르고 버틴다.

그 껍질이 여러 겹이고 기름 성분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어서 나무의 속살은 얼지 않는다.

얇은 옷 여러 겹이 두터운 옷 한 벌보다 추위에 효과적이라는 상식을 실증해주는 나무다.

 

자작나무 숲은 사람은 드물고 숲은 끝이 없는 추운 나라의 원시림이다.

자작나무 잎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는 몽골의 초원에 가고 싶고

하얀 눈이 내릴 때는 한 닷새 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