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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북방 높은 산의 나무

눈 덮인 백두산의 눈산버들

눈산버들     Salix divaricata var. metaformosa (Nakai) Kitag.

 

북부 고산지대에서 무릎높이 남짓 자라는 버드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줄기가 땅을 기며 잎은 양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얕은 톱니가 있다.

암수딴그루로 5~6월에 잎이 나기 전에 이삭모양꽃차례로 꽃이 핀다.

 

 

 

 

백두산 천지의 봄은 유월 중순에서야 시작된다.

이 무렵 가장자리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해서 7월에 들어서야 마지막 얼음 조각이 사라진다.

꽤 오래 전에 얼떨결에 따라나선 백두산 탐사길에 운 좋게 천지까지 내려갈 기회가 있었다.

천문봉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여 미터 쯤 가서 분화구의 비탈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화산회토에 덮인 비탈은 한 발 내디디면 세 걸음 미끄러지고 올라올 때는 그 반대였다.

옛날에 그 길로 등소평이 내려갔다고 해서 현지인들은 그 길을 등소평루트라고 불렀다.

그 작고 동글동글한 분은 데굴데굴 굴러가는 게 빠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록 남의 나라 땅을 통해 도달한 천지였으나 그 때의 감격과 전율을 잊지 못한다.

천지는 온통 얼음에 덮여 있었으나 가장자리에는 막 녹은 맑은 물이 찰랑거렸고

그곳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서백두의 비탈은 여전히 흰 눈을 두르고 위풍당당했다.

가이드는 북한과의 경계에 자리 잡고서 그쪽으로는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주었다.

 

천지 물가에서 만난 꽃들이 참 많았다.

그 무렵 난쟁이 진달래 같은 담자리참꽃은 이미 절정에 이른 듯 했고

두메자운, 돌꽃, 가솔송, 개머위, 개감채 등등이 막 꽃망울을 터뜨릴 참이었다.

 

모두가 처음 보는 꽃들이었는데 저만치서 낯익은 버들강아지들이 몽실몽실 피고 있었다.

천지 물가에도 버드나무가 있다니 천리타향에서 친구 만난 듯 반가웠다.

풀꽃에 정신이 팔려있던 때라 대충 보면서 높은 곳이어서 땅을 기면서 사는가 여겼다.

 

귀국해서 사진정리를 하면서 그 버드나무가 난장이버들이거나 눈산버들인 걸 알게 되었다.

눈산버들이란 높은 산에서 누워서 자란다는 이름이겠지만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핀 그 버들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난장이버들은 묵은 가지에 꽃이 피고 눈산버들은 새가지에 꽃이 피는 차이밖에 별 다른 점이 없고,

학명으로도 같은 Salix divaricata 라는 종명에 난장이버들은 var. orthostemma 라는 변종명이,

눈산버들은 var. metaformosa 라는 변종명이 붙어서 이들이 아주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콩버들)

그 후에도 몇 번 백두산 탐사를 하면서 콩버들이나 진퍼리버들 같은 고산의 버드나무를 만났다.

콩버들은 잎과 꽃차례가 콩만 해서 여간 귀엽지 않았고 진퍼리버들은 이름처럼 습지에서 살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천지에 갈 수 있어야 그 버들이 난장이인지 눈산인지 가려볼 수 있을 텐데

요즘 돌아가는 동북아정세로 봐서는 언제 그런 날이 올는지 기약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