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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드물게 만나는 나무

배반의 이름 좀목형

좀목형     Vitex negundo var. incisa (Lam.) C.B.Clarke

 

마편초과의 갈잎떨기나무로 경기도와 영남 등 일부 지역에 분포한다.

숲 가장자리, 바위지대, 하천가 등지에서 1~3m 정도 높이로 자란다.

6~8월에 가지 끝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원뿔모양꽃차례로 꽃이 핀다.

 

 

 

 

좀목형은 마편초과 순비기나무속의 작은 나무다.

모두 귀에 익지 않은 식물이름들이어서 족보를 먼저 훑어보았다.

마편초는 국내에는 드물지만 유럽에서는 약용식물로 꽤 대접받았던 듯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랑의 미약에 마편초를 넣었다는 기록이 있고,

어린이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면 행동이 활발해지고 호기심이 많아진다고 믿었다.

 

(좀목형)

순비기나무는 제주도 사람들이 불로초로 알고 새순을 나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문인 임제(林悌)가 쓴 제주여행기 남명소승’(南溟小乘)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제주도를 돌다가 김녕에서 백세 쯤 되는 노인 십여 명이 모여 노는 걸 보고

장수의 비결을 물었더니 노인들이 대답한 불로초가 순비기나무였다.

 

좀목형을 다른 이름인 좀순비기나무라고 바꿔 부르면 

순비기나무와 비슷하고 덩치는 좀 작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목형이 순비기나무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목형은 우리나라에는 없고 중국에 분포하며 중국 이름이 모형(牡荊)이다.

수컷 에 가시나무 자를 쓰는 중국명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좀목형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여름날 강둑에서였다.

연보라색 작은 꽃들이 이삭처럼 피어올라서 하늘빛 물빛과 편안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순비기나무 꽃과 모양은 비슷하고 크기만 작은 꽃들이 무수히 피어 벌 나비가 모였다.

이 꽃은 눈에 드는 현란한 색깔 대신 몸으로 스미는 은은한 향기를 내는 길을 택했다.

 

문득 어디선가 만났었던 듯한 까닭 모를 기시감이 들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오랜 기억의 미로를 한참동안 더듬은 끝에 어렵사리 떠올린 건

학창시절에 푸른 강 언덕에서 가슴 설레며 만났던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열일곱 소녀가 수줍은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나왔던 추억의 소환이었다. 

 

그런데 좀목형이라니,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이름이 달콤한 추억을 망쳐놓았다.

청순하고 향기로운 이 식물, 추억 속 수줍던 소녀의 이미지와 배반하는 이름이다.

그 근본도 모를 이름에 대한 실망감을 달래 줄 나만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본명인 모형(牡荊)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향(慕香)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慕香! 이제부터 나에게 좀목형은 그리운 향기, 모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