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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주변의 큰키나무

고욤샤베트를 만드는 까닭

 

고욤나무 Diospyros lotus L.

 

마을 주변이나 낮은 산에서 자라는 감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높이 5~10m.

암수딴그루로 5~6월에 꽃이 피고 늦가을에 지름1.5cm 정도의 열매가 익는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감나무는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 키워야한다고 배웠다.

감 씨를 그냥 심으면 감이 열려도 아주 자잘한 땡감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접붙이기를 해서 좋은 감을 얻는 원리를 똑 부러지게 설명할 지식은 없지만

고욤나무의 강한 생명력이 어린 감나무를 빠르고 튼튼하게 키워내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학자는 고욤의 는 작은 감을 의미하고 은 어미를 뜻한다고 풀이했다.

(한국식물생태보감1. 김종원)

감나무의 대리모 구실을 하는 고욤나무 이름에 걸맞은 해석이기는 하나,

기록상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걸 보면 그냥 주관적인 풀이정도로 여겨진다.

어떤 꽃벗이 작고 발그스레한 고욤나무 꽃을 보고 귀욤귀욤!’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의 이름풀이보다 그 한마디 감탄사가 더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고욤나무 수꽃)

고욤나무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는 최소한 천 년 전이라는 기록이 있고

길게는 삼천년 전의 지층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자료를 보았다.

원래 토박이 나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나무다.

 

고욤나무가 마을 주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건 인간의 활동과 관계가 깊다.

반세기 전 쯤 어렵던 시절에는 고욤 열매를 간식으로 즐겨 먹었는데, 

씨앗을 빼고는 먹을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자잘하고 맛도 떨떠름했으나

서리맞은 열매를 단지에 재워 겨울이 되면 샤베트sherbet가 되어 달콤해졌다.

 

{고욤나무 열매)

옛날 사람들은 고욤샤베트를 먹고 발라낸 씨앗을 집 주위에 뿌렸다.

다시 감나무를 기를 때를 대비해서 적절한 곳에 씨앗을 뿌린 까닭에

시골의 오래된 감나무들이 대부분 집 주변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산길을 가다가 열매가 풍성한 고욤나무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이번 겨울에는 꼭 고욤샤베트를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벼르게 되었다.

동네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던 시절에 좀처럼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단 한 번밖에 먹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잠재적인 욕구로 자리잡은 탓이다.

 

늦은 황혼에 접어든 어른들에게 고욤샤베트 만드는 방법을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요즘 세상에 맛난 것들이 천지인데 그걸 왜 먹냐며 손사래를 친다.

나는 그 맛을 기대하기보다는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202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