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배나무 Pyrus ussuriensis Maxim.
전국의 산지에 분포하는 갈잎큰키나무로 15m 정도로 자란다.
4~5월에 꽃이 피며 수술은 20개 정도, 암술대는 다섯 개다.
8~10월에 지름 3~6cm 정도의 열매가 황갈색으로 익는다.
우리나라 마을마다 있는 당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내 고향에서는 ‘동네할배’라고 부르며 지금도 음력 정월과 시월에 제사를 지낸다.
대개 당산나무는 거목이 된 느티나무나 팽나무, 소나무, 그리고 은행나무 같은 것들인데,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돌배나무가 마을 수호신의 중책을 맡았다.
어렸을 적에 동네 어른들로부터 이 돌배나무가 당산나무가 된 내력을 들은 기억이 난다.
백년 쯤 전에 마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산에서 떠내려 와서 마을 어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 없던 들녘에 자리 잡은 이 나무를 신령이 준 선물로 여기고,
다시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큰 돌로 단을 쌓아 나무 밑동을 감싸고 들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그 그늘에서 쉬며, 새참도 먹고 하던 나무가 '동네할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의 나에게 그 당산나무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존재였다.
까마득 솟은 나무 꼭대기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처럼 멀어 보였다.
봄에 꽃이 피면 그 향기가 들녘에 가득했고 가을이 되면 주먹만한 돌배가 열렸다.
그 배는 어쩌다 산에서 만나는 돌배보다는 훨씬 크고 달았다.
과일다운 과일을 구경할 수 없었던 옛날에 그 돌배는 누구나 먹고 싶어 했는데,
큰 아이들은 요령껏 따먹었으나 예닐곱 살이었던 나는 맛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는 맘씨 좋은 동네 형 덕분에 딱 한입 베어 물었던 그 달달한 맛을 머금은 채 고향을 떠났다.
어렸을 적에 꿈도 꾸지 못하던 나뭇가지 높이가 명절에 고향을 찾을 때마다 낮아졌다.
그러구러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는 노쇠하고 원줄기는 썩어서 무너졌다.
모든 잎이 떨어진 겨울에는 도무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초췌한 줄기들이
봄이 오면 기적처럼 풍성한 꽃을 피우고 새잎을 내곤했다.
금년 봄 어느 날 나는 백발이 다 되어서 페르귄트처럼 고향으로 돌아왔다.
늙은 당산나무는 동네 초입에서 눈부시도록 하얀 꽃을 가득 피워 나를 반겨주었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모르는 나무가 피운 그 하얀 꽃은
평생 고향을 지키며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던 솔베이지의 백발 같았다.
202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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