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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주변의 큰키나무

배리배리했던 시무나무 떡

 

 

  

시무나무  Hemiptelea davidii (Hance) Planch.

 

주로 하천 가장자리에서 15m 가까이 자라는 느릅나무과의 갈잎나무.

어린 가지에는 2~10cm길이의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발달한다.

수꽃양성화한그루로 4~5월에 꽃이 피고, 열매 한쪽에만 날개가 있다.

 

 

 

 

 

 

 

二十樹下三十客 시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里村五十飯 망할 마을에서 쉰밥을 먹었네

 

쉰밥을 얻어먹은 나그네가 야박한 마을 인심을 원망한다는 김삿갓의 시다.

이 시 첫머리의 이십수二十樹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스무나무가 된다.

이어서 10을 더하면서 차례로 등장하는 三十客은 서른 객에서 서러운 나그네,

四十里는 마흔리에서 망할 마을, 五十飯쉰밥이 되는 재미있는 시다

 

 

 

전래동요인 나무타령에도 열아홉에 스무나무라는 대목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스무 개시무 개라고 하고, 시무나무를 스무나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필시 시무나무는 숫자 20과 어떤 관련이 있지 싶은데 그럴듯한 유래를 찾지 못했다

  

시무나무는 어릴 적에 냇가에서 많이 보았던 나무였다.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어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시무나무는 

봄철에 그 보드라운 잎을 따던 처녀시절 고모의 모습과 함께 간직되어 있다.

지금은 한참 할머니가 된 고모에게 자잘한 그 잎들을 따서 무얼 했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쌀이 귀해서 시무나무 잎을 쌀가루와 버무려서 떡을 해먹었다고 했다.

시무나무 잎은 별 맛은 없이 그냥 배리배리했다고 한다.

고모는 배리배리한 맛이 살짝 비릿한 듯 상큼한 풀냄새라고 했다. 

 

 

 

여린 잎은 퍼슬퍼슬한 떡을 만들어 먹고 날카로운 가시는 다른 군것질의 도구가 되었다.

개울에 바글바글했던 다슬기는 한 냄비 삶아 여름 밤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는데,

시무나무의 가시는 다슬기를 파먹기에 안성맞춤인 송곳과 같았다.

긴 줄기에 가시가 한 스무 개쯤 달려서 시무나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는 하천정비 공사나 논밭에서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농약 탓인지 심심산골 내 고향의 개울에서도 다슬기를 보기 어려워졌다.

 

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단지 '시무'라는 이름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어록이 떠오른다.

임진왜란 때 만약 호남을 잃으면 나라도 지탱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오랜만에 시무나무를 만나 모든 삶이 자연 속에서 꾸려졌던 시절을 돌아보니,

若無自然 是無人間,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