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Zelkova serrata (Thunb.) Makino
주로 산지 계곡부에서 자라며 높이 30m 지름 3m 정도까지 성장한다.
느릅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이며 4~5월에 잎과 함께 꽃이 핀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쯤 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동네 안쪽 골짜기에서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를 베었다.
그때 다섯 살 배기 아들은 베어지는 나무의 고통과 슬픔을 헤아릴 줄 몰랐다.
베어낸 나무를 몇 토막으로 잘라 소달구지에 싣고 사십 리 떨어진 읍내에 갈 때
나는 달구지를 타고 난생 처음 동네 밖으로 세상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구경한 자동차와 제재소가 산골 아이에게는 근대문명과의 첫 만남이었다.
벨트처럼 돌아가는 톱날이 통나무를 켜낼 때 나는 야릇한 공포에 휩싸였었다.
판자를 차곡차곡 달구지에 싣고 그 위에 걸터앉아 집으로 돌아올 무렵에야
엄청난 기계음과 무시무시한 톱날의 충격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딸랑거리는 소의 요령소리와 장단 맞추듯 덜컥거리는 달구지 바퀴소리,
그리고 초저녁 은은한 달빛이 기계문명에 놀란 어린 가슴을 다독거렸으리라.
느티나무 널판을 집 앞 호두나무 그늘 아래에 우물 정井자로 쌓아놓고 두 해쯤 지나
고장에서 이름 높은 장인匠人을 모셔다 집에서 숙식하며 장롱을 짜도록 했다.
그로부터 반 년 동안 농을 짜는 작업을 구경하는 것이 내게는 흥미로운 일과였다.
목수가 가끔 쌀가마를 지고 가서 며칠씩 쉬고 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공임이었다.
산에서 임의로 나무를 베는 건 요즘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수 백 년을 그래왔듯 소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참나무는 땔감으로 쓰고
물푸레나무로는 괭이와 호미, 낫과 도리깨의 자루를 만들었다.
산에서 자라는 느티나무로는 가구를 짰고 마을 주변의 느티는 정자나무 쉼터가 되었다.
수천 년 우리 조상들의 휴식처가 되어준 나무 이름에 붙은 ‘느티’라는 말은
고된 농사일 틈틈이 ‘느긋하게 쉬는 터’라는 어감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느티 거목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느티나무가 베어져서 장롱이 되는 걸 지켜본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 그 때 나무를 베었던 자리에 가서 그 나무의 후손들이 성장해서
예전 풍경과 같아진 걸 보고서야 다소 위안이 되었다.
그 때 짠 느티나무 장롱은 회갑이 다 되도록 고향집에서 소임을 다해왔다.
그 느티나무 장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휘거나 뒤틀림이 없고 벌레도 먹지 않았다.
얼마 전에 그 장롱을 뒷방으로 모시고 그 자리에 붙박이장을 설치하는데 세 시간 쯤 걸렸다.
예전에 3년이 걸렸던 장롱이 시간상으로는 8000배 이상 빨리 만들어진 셈이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겠지만 느티장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는 느티나무 장롱을 짜던 큰할아버지의 시대,
소달구지에 달빛 가득 싣고 오던 그날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려줄 것이다.
202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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