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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덩굴로 자라는 나무

모래언덕 지킴이 순비기나무



 


















 

순비기나무       마편초과

Vitex rotundifolia L.f.

 

동남아시아와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 분포하며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흔하다.

떨기나무로 분류되나 줄기가 모래땅을 기면서 2~3m정도 덩굴처럼 뻗는다.

7~10월에 가지 끝에서 4~6cm의 원뿔모양꽃차례를 이루며 꽃이 핀다.

 

    



 

순비기나무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산다.

 숨비소리는 숨비기소리라고도 하므로 이 나무와 어떤 관련이 있지 싶다.

해녀의 고장인 제주에서는 이 나무를 숨비기낭이라고 부르므로 더욱 그러하다.

늘 해녀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순비기나무는 그녀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나서 두통이 있을 때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았다고 한다.

수압이 높은 바다에서 오래 물질을 하고 나오면 흔히 두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순비기나무는 겨울철에는 잎과 줄기가 마르기 때문에 땔감으로도 적당했다.

차가운 겨울 바다 물질을 마친 해녀들은 이 나무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날의 바닷속 이야기에다 끈끈한 정을 곁들여 몸을 녹였으리라. 


순비기나무는 관목이지만 줄기가 모래땅을 기다시피해서 덩굴처럼 보인다.

이 나무가 모래 언덕 위에 촘촘한 그물처럼 얼기설기 엮어진 모습을 보면

해안사구를 보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람의 영역을 지켜주는 사구의 지킴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에 모래 위에 쭉쭉 뻗은 순비기나무의 줄기에서 꽃 필 때는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이 백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시원한 바다와 뜨거운 태양을 즐기는 그 휴식의 시간만큼은 누구나 행복하리라.

그러한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저마다의 고단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모래 위에 줄기를 펼친 순비기나무 역시 세상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안락한 삶을 얻기까지 이 나무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 동안 도전해 왔으리라.

건조한 모래땅에 뿌리를 더 깊이 내려야 했고 세찬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염분도 견뎠고

타는 듯한 폭염과 기약 없는 긴 가뭄에서도 버텨냈을 것이다.

지금의 안정된 삶은 과거의 역경을 극복한 결과이고,

나은 내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이 생명의 본질처럼 생각된다.

 

2019.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