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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벌들의 눈으로 바라본 히어리


 

    


















 

히어리              조록나무과

Corylopsis coreana Uyeki

 

경남, 전남의 산지에 주로 분포하고 강원도 경기도의 몇몇 산에서도 자생한다.

4m 정도 자라며 수피는 회갈색이고, 잎은 원형에 가깝고 개암나무와 비슷하다.

3~4월에 자잘한 꽃이 5~12개씩 3~4cm길이의 총상꽃차례로 늘어진다.

 

    



 

히어리를 처음 본 곳은 전남 순천에서 구례로 넘어가는 송치재였다.

 이른 봄이라 생강나무려니 하고 다가가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연노랑색 꽃이 귀고리처럼 올망졸망 늘어져서 여간 귀엽지 않았다


(박해정 님 사진)


20여년 전만 해도 히어리는 전남 남부지역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한반도고유종에다 멸종위기식물 2급의 타이틀이 붙어있었다.

그 후에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도 발견되고 대량 증식에 성공하자

 2011년에 멸종위기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게다가 일본 큐슈에 자생하는 C. glabrescens와 같은 종이라는 견해도 있어서,

히어리의 입장에서는 세간의 이목으로부터 벗어나 차라리 편하게 되었다.


볕 따사로운 어느 날 겨울잠을 깬 벌들의 첫 봄나들이를 상상해 보았다.

파란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노란 꽃들이 벌들을 반겨 맞을 것이다.

 문득 나도 벌이 되고파서 히어리 꽃 흐드러진 나무 아래 드러누웠다.

놀랍게도 히어리의 꽃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눈높이로 히어리 꽃을 보면 자잘한 꽃 이삭처럼 보이지만

 땅에서 날아오르는 벌들의 눈에는 하나의 큰 꽃으로 보인다.

 벌과 나비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꽃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밑에서 바라본 히어리 꽃)


히어리는 1949년에 발간된 한국식물명감(박만규)송광꽃나무로 이름이 올랐다.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 자락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6년에 발간된 한국식물도감(정태현)에서는 송광납판화로 이름이 바뀌는데,

이는 꽃받침이 밀납처럼 얇다는 중국이름 납판화蠟瓣花를 차용한 것이다

 

지금 국명으로 쓰고 있는 히어리1966년에 나온 한국수목도감(이창복)에서 등장했다.

히어리는 학자들이 이 나무를 발견하기 전부터 이 지방 사람들이 불러오던 이름이었다.

 송광꽃나무나 송광납판화 같은 조립식 이름보다 얼마나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이름인가.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옛 이름이지만 고유의 감칠맛을 듬뿍 머금은 이름이다.

늦었지만 이 멋진 이름을 찾아내서 천만다행이다.



 

2019.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