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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천선과나무의 몰래한 사랑



 

 


















 

천선과나무

Ficus erecta Thunb.

  

뽕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로 남해안의 섬들과 제주도의 낮은 숲에서 자란다.

암수딴그루로 5미터 정도 성장하며 잎겨드랑이에 밤톨만한 꽃주머니가 달린다.

천선과좀벌이 수꽃주머니에서 자라 수분을 하고, 암꽃주머니가 가을에 익는다.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는 익어가는 날에도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1990년대 초에 꽤 유행했던 대중가요 몰래한 사랑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무화과는 이름처럼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

즉 열매 모양의 꽃주머니 속에 수술과 암술이 있어서 몰래 수분이 이루어진다.

천선과나무는 남부지방에서 과실나무로 재배하는 무화과의 야생에 사는 친척으로,

열매의 크기가 무화과보다 작을 뿐 생김새와 맛이 비슷해서 예전에는 많이 먹었다.



무화과나 천선과의 수분과정을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복잡하지만 꽤 흥미롭다.

천선과는 암수딴그루로 수꽃주머니 속에서 천선과좀벌이 교미를 하고 알을 낳는다.

좀벌의 알은 서너 개의 수술로 둘러싸여 새끼가 나올 때 꽃가루를 묻힌다.

수컷은 수꽃주머니 안에서 교미만 하고 생을 마치기 때문에 날개가 생기지 않는다.

암컷은 날개가 생겨 수꽃주머니를 나와 다른 꽃주머니로 들어가서 알을 낳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좀벌의 암컷이 수꽃주머니와 암꽃주머니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꽃주머니로 들어간 암컷은 주머니 안에 돌기처럼 나온 충영꽃에 산란을 하지만,

암꽃주머니로 들어간 벌은 암꽃 주두가 길고 낭창낭창하여 수란관을 꽂으려고 애만 쓰다가

꽃가루만 잔뜩 묻혀주고 그곳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천선과좀벌의 애벌레가 자라고 있는 수꽃주머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천선과는 천선과좀벌에게 번식할 보금자리와 영양을 제공하고,

좀벌은 천선과의 수분을 책임지고 도와주는 철저한 공생관계이다.

결국 천선과의 몰래한 사랑은 비밀스런 수분의 과정인 셈이다.

수분을 마친 암꽃주머니는 성숙하여 씨앗을 만들고 말랑말랑해져서 맛있는 열매가 되고,

수꽃주머니는 좀벌을 키워내고 할 일을 마치면 그냥 떨어져 버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하나는 맛있는 과일이고 하나는 벌레집인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몰래 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있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도 있다.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도 진실한 사랑이고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사랑은 사랑이다.

 ‘몰래한 사랑에 공감하는 이들은 천선과 열매를 보면 남다른 감회에 젖을 듯하다.

 

2018. 11. 30.

  






  

모람

Ficus oxyphylla Miq.

     

뽕나무과의 늘푸른덩굴나무로 남해안과 제주도의 낮은 산지나 돌담에서 자란다.

무화과나 천선과나무처럼 꽃주머니로 좀벌 종류가 드나들며 수분을 한다.

암수딴그루식물로 6월에 줄기 윗부분에 꽃주머니가 생겨서 8월에 성숙한다.

왕모람에 비해 잎끝이 꼬리처럼 길고, 열매가 작은 편이다.






  

왕모람

Ficus thunbergii Maxim.

 

늘푸른덩굴나무로 전남의 몇몇 섬과 제주도의 바닷가나 숲에 자란다.

줄기는 다른 나무나 돌담 등을 타고 길게 뻗고, 꽃주머니나 열매가 크다.

잎끝이 뾰족한 모람에 비해 잎끝이 둔하며, 잎 뒷면의 맥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