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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풀꽃처럼 작은 나무

서러운 이름 산매자나무


 















산매자나무

Vaccinium japonicum Miq.

 

진달래과의 갈잎떨기나무로 한라산 기슭의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30~80cm 정도 자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어린 가지는 녹색을 띤다.

6월 중순에 잎겨드랑이에서 길이 1cm정도의 꽃이 한 개씩 달린다.

 

    


 

1950년대에는 아이들을 보통 예닐곱씩은 낳았고 열 남매 가정도 드물지 않았다.

농경시대나 초기 산업화시대에는 노동력이 자산이고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저마다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는 출산낙관주의시대기도 했다.

농사 지을 땅도 살 집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대책 없이 아이들을 낳았다.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유랑 가족은 아이들이 열 살 정도가 되면 형편이 괜찮은 집에다

작은 머슴이나 부엌데기로 두고 밥만 먹여달라며 다시 찾으러 오지 않겠다며 맡기고는

부모자식의 인연마저 끊으려는 듯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기약 없이 떠났다.

아이를 맡은 집에서는 그 집의 성을 따서 이름을 새로 지어주고 한 식구로 대했고,

친자식과 다름없이 학교도 보내고 같이 일하며 형제처럼 지내게 했다.

 내 고향 동네에서도 그렇게 맡겨진 아이들이 너댓 집 건너 하나씩은 있었다.


산매자나무를 보면 어려운 시절에 남의 집에 맡겨졌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진달래과의 이 나무가 꽃과 줄기와 잎 어느 한 구석도 닮은 곳이 없고

분류학적 근연관계도 없는 매자나무 집안의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진달래 집안에는 철쭉, 정금나무, 백산차, 월귤 등등 형제가 스물이 넘다보니

이름 하나 지어주기도 힘겨워서 엉뚱한 매자나무 집안 이름을 빌려 쓴 꼴이다.



그래서 서러운 이름인 산매자나무는 무릎 높이 남짓 자라는 자그마한 나무다.

6월에 뾰족한 꽃봉오리가 네 갈래로 갈라져 파마머리처럼 말려 올라가면서 꽃이 핀다.

진달래과 식물 중에서는 그나마 월귤이나 넌출월귤의 꽃과 열매를 많이 닮아서,

원래 자기 집안의 이름을 붙여주자면 한라월귤정도가 적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집안 이름이 붙은 산매자나무를 볼 때마다 그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본다.

동네마다 맡겨진 아이들이 대여섯은 있었으니 나라 전체로는 수십만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은 모두가 어려운 시대였고 나라도 가난해서 아이들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으나

집집마다 인정은 차고 넘쳐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 살아남았다.

초년고생은 돈 주고도 산다는데 요즘 말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 아이들이

어느 하늘 아래서라도 산매자나무처럼 모두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2018.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