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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풀꽃처럼 작은 나무

단심丹心을 품은 죽절초



 


















 

죽절초 竹節草

Sarcandra glabra (Thunb.) Nakai

 

홀아비꽃대과의 늘푸른떨기나무로 서귀포일대의 계곡 주변에 드물게 자생한다.

무릎 높이 남짓 자라며, 5~6월에 가지 끝에서 꽃잎이 없는 꽃이 피고,

겨울에 지름 5mm 정도의 열매가 붉게 익는다. 멸종위기식물 2.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개 홀아비꽃대와 옥녀꽃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홀아비꽃대의 친척뻘되는 죽절초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죽절초는 제주에서도 서귀포 부근 계곡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온난한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이 식물의 북방한계가 서귀포인 셈이다.


(죽절초의 꽃, 홀아비꽃대와 닮은 면이 있다)


죽절초는 자가수분도 잘 되고 삽목이나 종자 발아도 잘 되어 번식이 쉽지만

추위에는 약해서 겨울이 포근한 특별한 곳에서만 야생에서 살 수 있는 듯하다.

옛날에는 아열대식물의 보고인 서귀포의 돈내코 계곡에 더러 자생하고 있었으나

애호가들과 도채꾼들의 탐욕에 의해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옛사람들이 죽절초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수세기 전에 멸종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사군자(四君子)로 선비들로부터 대접 받았던 매란국죽에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줄기가 대나무의 마디를 닮았다는 죽절초라는 이름 또한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눈 내리는 겨울에도 푸른 잎에 붉은 열매가 의연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의리와 절개를 중히 여겼던 옛 선비들이 분명 사군자보다 더 높은 군자로 쳤을 법하다.


(줄기와 마디가 대나무와 비슷하다)


죽절초의 붉은 열매를 보면 정몽주의 임향한 일편단심이 떠오른다.

단심丹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군주에 대한 변치 않는 '붉은 마음'이다.

역사적 평가야 어떠하든 목숨보다 단심을 소중히 여겼던 선비들이 무수히 많았다.

수년 전에 백성들의 힘으로 나라의 정권이 뒤집어진 다음에 2대에 걸친 최고권력자와

그의 주변에서 권력을 누렸던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찾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재판정에서 임향한 일편단심을 보여준 자는 없었다.


권력에는 부패의 속성이 내재하고 정치적 신념에 따라 평가도 상반될 수 있으나,

한 나라의 최고권력에 있었던 무리들이 인간적인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은 초라했다.

그걸 지켜봐야만 하는 이 나라의 백성들도 참담하고 서글픈 심정이 들었으리라.

눈 속에서도 푸른 절개와 단심을 간직한 죽절초 같은 사람이 그리운 시대이다.

 

2018.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