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온나무
Pellionia scabra Benth.
쐐기풀과의 늘푸른떨기나무로 한라산 남쪽 계곡의 음지에서 자란다.
보통 40cm 높이로 자라고, 2~4월에 수꽃차례는 줄기 윗부분에,
암꽃차례는 아래쪽에 달리는데 어린 개체는 거의 암꽃만 핀다.
펠리온나무는 한라산 남쪽 계곡에 은둔하듯 사는 작은 나무다.
이 나무가 사는 곳에서 함께 볼 수 있는 식물은 고작 호자나무 정도다.
폭우가 내리면 급류가 휩쓸고 지나가는 물가의 바위틈에 살기 때문에
줄기가 성한 것이 별로 없어서 나무답게 성장하기가 어렵고
밑동에 겨우 잎 몇 장을 달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양새이다.
나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펠리온나무는 단지 희귀할 뿐 볼품은 없다.
줄기가 목질이어서 나무라고는 하나 같은 쐐기풀과의 모시풀보다도 덩치가 작다.
줄기 아랫부분에는 암꽃차례가 달리고 윗부분에 수꽃차례가 성기게 달리는데,
급류에 시달리며 제대로 줄기를 뻗지 못하는 탓에 수꽃은 여간해서 보기가 어렵다.
이 나무의 속명 ‘Pellionia’는 처음 발견한 19세기 프랑스의 군인 Alphonse Pellion을
기념한 것이고, 국명은 속명을 그대로 번역한 이름이다.
19세기는 유럽 열강들이 전 세계로 진출하면서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 되었던 시대여서
프랑스의 군인이 어느 나라에서 이 식물을 발견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식물을 가려볼 수 있었던 한 군인의 안목은 존경할 만하다.
물과 땅의 위험한 경계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며 사는 이 식물에다
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일생을 바치는 군인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어울린다.
비록 볼품없는 나무라도 반생을 군복을 입고 살아온 나 역시 특별한 유대를 느낀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잎과 줄기는 물론 꽃마저도 일생동안 변함없이 army green인
군복의 색깔을 입고 사는 나무기 때문이다.
201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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