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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덩굴로 자라는 나무

전설의 미인 실거리나무



 















실거리나무

Caesalpinia decapetala (Roth) Alston

 

콩과의 갈잎덩굴나무로 서남해지방의 바다 가까운 낮은 산지에 자란다.

덩굴에 날카로운 가시가 나오며, 4~6m정도 길이로 비스듬하게 뻗는다.

5~6월에 지름 2cm 정도의 양성화가 총상꽃차례로 아래를 보고 핀다.



 

옛날 남쪽 바다의 어느 섬에 미모의 젊은 과부가 살았다.

남편이 없는 이 여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예쁜 옷을 지어 입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육지에서 비단 옷감을 사오다가 풍랑을 만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이듬해 봄에 여인의 집 가까운 바닷가에 그녀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줄기에 가시가 나와서 이상하게도 예쁜 옷을 입은 사람만 지나가면

옷의 실오라기를 걸어 당겨서 옷을 못쓰게 만들었다



이 짤막한 전설에서 예쁜 옷만 골라서 걸어 당긴다는 대목에 감칠맛이 있다.

실거리나무의 가시는 아주 예리하지만 크기가 작아서 거친 천에는 힘을 못 쓰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천일수록 미세한 실오라기를 걸어 당겨 옷에 흠집을 낸다.

허드렛일 하는 작업복이야 어떤 손상을 입거나 말거나 마음 쓸 일이 없지만

비싸고 좋은 옷이 상하면 마음도 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시가 있는 식물들 중에서 실거리나무의 가시만큼 옷에 위험한 것이 없다.

엉겅퀴 가시처럼 직선형으로 난 것은 찔렸을 때 잠깐 따끔하고 말지만,

실거리나무와 같이 갈고리 모양으로 나온 가시는 옷이나 피부에 큰 상처를 남긴다.

의문의 여지없이 실거리나무의 이름은 미세한 실오라기도 잘 걸려서 붙었을 것이다.



실거리나무는 철조망이 얽히고설킨 듯한 덩굴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동물들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아서 씨앗을 멀리 전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 나무가 서남해안의 섬이나 바다 가까운 곳에서 주로 눈에 띠는 걸 보면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전설의 여인처럼 씨앗이 해류를 타고 표류하는 모양이다


 

실거리나무에 다가갈 때는 까칠한 미인에게 접근하듯이 조심할 일이다.

실실거리며 어설프게 굴다가는 자칫 마음에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실거리나무의 꽃은 자세히 들여다 볼만하다.

한 뼘 남짓 곧게 솟은 꽃차례에 작은 노란 나비들이 줄지어 앉은 듯한 꽃들은

과연 전설적 미인의 화신처럼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2018.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