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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큰키나무

재미있는 이름 까마귀베개


 

 















까마귀베개 

Rhamnella franguloides (Maxim.) Weberb.

 

제주도와 호남, 충남 안면도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갈매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6~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차례에 황록색의 꽃 10~20개가 순차적으로 핀다.



 

 

까마귀베개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

까마귀가 베개를 베고 자는 모습은 동화나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림이다.

이 나무의 씨앗이 가운데가 살짝 눌린 듯해서 베개를 닮기는 했는데,

밥 알갱이 정도의 크기여서 까마귀는커녕 참새가 베기에도 너무 작다.

크기로만 보면 고양이 젖꼭지를 닮았다는 중국 이름 묘유(猫乳)가 적당하다.


(까마귀베개의 씨앗)


까마귀베개의 꽃망울이 막 터지려고 할 무렵 한 보름 해외에 나갈 일이 생겼다.

꽃을 본 적이 없어서 친구에게 사진으로 잘 찍어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귀국해서 전화를 했더니 매일 가보았는데 꽃이 제대로 피지 않더라고 했다.

웬일인가 싶어서 며칠 동안 지켜보니 이 꽃차례는 여남은 개의 꽃봉오리 중에서

하루에 한두 개만 찔끔찔끔 피는데, 친구는 꽃이 모두 필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까마귀베개의 꽃차례, 하루 한 두개씩 오랫동안 순차적으로 핀다)


이렇게 꽃을 피운 탓에 그 열매도 순차적으로 익어가면서 색깔이 변해간다.

노란색으로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주황, 빨강, 자주색으로 짙어지다가 까맣게 되는데,

가지가지마다 이런 예쁜 색의 열매들이 동시에 달려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결국 이 열매가 까맣게 되므로 이름에 까마귀가 붙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못 살던 시절에는 이 열매를 군것질거리로 먹기도 했다는데, 아주 약한 단맛에

까마중 열매처럼 들큰한 맛이 약간 섞인 듯해서 요즘 입맛으로는 그리 먹을 만하지 않다.

혹시 까마귀가 이 열매를 잘 먹어서 까마귀베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열매의 다양한 색상) 

까마귀베개의 씨앗은 통나무 토막 같은 전통 베개를 많이 닮았다.

베갯머리에는 잠자는 동안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붉은색을 많이 썼고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문양이나 문자를 수놓아서 다채롭고 화려했다.

그러한 베갯머리의 화려함은 까마귀베개 열매의 다양한 색상과도 통한다.


옛날에는 처녀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몇 년 전부터 혼수를 준비했다.

낭군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채 막연한 행복을 꿈꾸며 몇 년의 밤을 세면서

방석이며 노리개며 베갯머리에 정성을 다해 수를 놓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귀베개의 열매는 그 아득한 옛일을 떠올려주는 알약인 듯도 하다. 

 

2018.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