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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어느 먼나무의 영욕


 














먼나무

Ilex rotunda Thunb.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바다 가까운 숲에 자라는 감탕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암수딴그루로 6월에 햇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지름 5mm정도의 꽃이 핀다.

가을에 붉게 익는 열매가 풍성하고 아름다워서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육군 제2연대 1대대 장병들은 한라산에서

30년생쯤 되는 먼나무 한 그루를 캐다가 그들의 주둔지에 심었다.

4.3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서귀포에 몇 년 주둔했던 기념식수였다.

그리고 이 나무가 50살쯤 되던 1971년에 공비토벌 기념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다는 명분으로 제주도 지정 문화재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다.


(한때 제주도 문화재기념물 15호였던 서귀동 먼나무. 건물과 주차장에 둘러싸여 더 이상 가지를 뻗을 수 없다.)


2003년에 대통령이 4.3을 국가권력이 저지른 잘못’이라며 제주도민에게 사과하자,

 그 이듬해에 이 나무 앞에 서있던 기념비는 제거되었고, 기념물에서도 해제되었다.

그 대신 그 나무에서 3km 북쪽의 170살쯤 되는 앞내 먼나무를 대체지정하려 했으나,

문화재기념물로 지정하지는 않았고, ‘국내 제일의 먼나무라는 타이틀만 비석에 새겼다.


먼나무는 나무가 검다는 의미의 제주도의 방언 먹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나무의 줄기에 검푸른 이끼가 자리 잡지 않는 한 원래 줄기는 밝은색을 띠고,

 ‘앞내 먼나무의 안내간판에도 먼낭으로 씌어 있으므로 먹낭유래설은 근거가 빈약하다.

그렇다면 나무가 멋있다는 멋나무가 먼나무로 되었다는 유래설이 보편성이 있다.


(서귀포시 서홍동의 국내최고령 먼나무. 일명 앞내 먼나무)


먼나무는 사철 푸른 잎에 가을에 붉게 익는 열매를 이듬 해 여름까지 달고 있다.

싱싱한 상록의 잎과 풍성한 붉은 열매는 보는 사람마다 멋있다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며,

남부 지방이나 제주도에서는 공원이나 도로변에 가로수로 심어서 이국적 풍경을 연출한다

 

국어사전에서는 멋을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또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로 풀어놓았으나, 이런 몇 마디의 수사로는 멋의 깊은 맛을 알 수 없다. 

단순한 사전적 의미로만 보더라도 먼나무에게는 멋있다는 버거운 찬사 보다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표현이 보다 어울리고, 먼나무도 받아들이기가 편할 것이다


(먼나무의 수꽃(왼쪽)과 암꽃(오른쪽)

 

아무튼 70여 년 전에 멋모르고 납치되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먼나무가 딱하다.

지금은 100살쯤 되었을 이 나무는 더 이상 가지를 뻗을 수 없게 되었다.

사방으로 균형 있게 가지를 뻗어 아름답게 자란 이 나무는 두 방향이 건물로 막혀서

반쪽은 더 이상 자랄 수도 없고, 트인 쪽은 주차장이어서 나무 전체를 사진에 담기도 어렵다.

한라산의 대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야 할 나무가 원치도 않았던 문화재가 되었다가,

세태가 변해 버림받고 이제 옹색한 구석에서 구차하게 사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2018. 8. 17.

  





(감탕나무, 전남 보길도, 서명원님 사진)  

    

 

감탕나무

Ilex integra Thunb.

 

남해안, 제주도, 울릉도의 바다 가까운 산지에 자라는 늘푸른큰키나무.

암수딴그루로 3~5월에 2년지의 잎겨드랑이에 황록색의 꽃이 모여 달린다.

먼나무는 새가지에 꽃이 피고, 감탕나무의 열매는 먼나무에 비해 성기다.

감탕(甘湯)은 목재 접착제나 새를 잡는데 썼던 이 나무의 끈끈한 수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