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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굴거리나무의 모래시계


 
















굴거리나무

Daphniphyllum macropodum Miq.

 

호남과 제주도, 울릉도의 산지에 자라는 굴거리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암수딴그루로 5~6월에 새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자잘한 꽃들이 핀다.




 

굴거리는 잎갈이를 할 때 묵은잎이 아래로 굽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이름이다.

신록의 어린잎이 하늘을 향하고 묵은잎이 아래로 처진 모양은 모래시계를 닮았다.

그 모습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축하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세대교체다.

새잎이 나올 때 묵은잎이 자리를 양보한다는 뜻으로 교양목(交讓木)이라고도 한다


(새잎이 나온 굴거리나무)

 

새잎이 성장하여 묵은잎과 같은 크기가 될 무렵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에 꽃이 핀다.

암수딴그루인 이 나무의 꽃은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므로 곤충을 유혹하는 꽃잎이 없다.

암꽃은 작은 단지 모양에 꽃가루를 받으려고 빨간 입술을 쏙 내민 모양이 귀엽고,

수꽃은 산호처럼 많은 가지를 내고 그 끝마다 꽃가루를 잔뜩 담은 주머니를 달고 있다.


(꽃가루를 날리는 수꽃차례)


숲을 헤집고 다니다가 뭔가를 건드렸는지 뽀얀 가루가 날렸다. 잘 익은 수꽃이었다.

그 순간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지푸라기처럼 가는 가지로 수꽃차례의 꽃자루를

개미허리도 다치지 않을 만큼 살짝 건드려보니 기다렸던 듯 꽃가루를 마구 뿜어대었다.

그 하얀 꽃가루는 얼마나 가벼운지 연기나 안개처럼 스멀스멀 숲으로 퍼져나갔다.


(굴거리나무의 암꽃차례)


굴거리나무는 여느 식물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않고 화려한 단풍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월의 신록은 꽃만큼이나 화사하고 꽃잎이 없는 자잘한 꽃차례들도

가까이 다가가보면 조물주의 오묘한 솜씨에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 굴거리나무의 모래시계는 사계절 동안 새잎이 나고 묵은잎이 처지고 꽃이 피고

꽃가루를 날리며 열매가 익어가고 마른 잎이 떨어지는 그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일년의 시간이 다했을 때 뒤집어주지 않아도 새로운 모래시계가 축복 속에 탄생한다.

 

2018. 8. 10.






(좀굴거리의 수꽃차례(왼쪽)와 암꽃차례(오른쪽))




좀굴거리

Daphniphyllum teijsmanni Kurz ex Teijsm. & Binn.

 

굴거리나무에 비해 아주 드물고, 잎이 작고 잎맥이 조밀하며, 잎 뒷면의 그물맥이 도드라진다.

좀굴거리는 암술머리가 연두색이고 수꽃에 꽃받침이 있으며 열매가 위로 서고, 굴거리나무는

암술머리가 붉은빛을 띠며 수꽃에 꽃받침이 없고 열매가 아래로 늘어진다.